제목에 전달하고 싶은 내용 압축
표지만 살펴도 독서 효과 나타나
오래전 한 회사에서 있었던 실화다. 책 제목에 대해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재밌는 이야기였다. 거론된 책들은 모두 당시를 풍미했던 베스트셀러. 인턴이 팀원들 특성에 맞춰 절묘하게 책을 고른 거였다. 불의의 화신이던 팀장, 매너리즘에 찌든 차장, 줏대 없는 과장, 그리고 그들 모두의 ‘밥’이던 막내 팀원. 궁금한 건 딱 하나였다. “그래서 걔 붙었어?” 이야기를 전해준 지인은 그걸 왜 묻느냐는 듯 답했다. “떨어졌지.”
그게 책 선물을 빙자한 ‘교양 있는 돌려까기’였는지, 아니면 진심은 넘치지만 눈치는 부족했던 큐레이션이었는지. 진실은 당사자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이 웃긴 이야기는 책 제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대개 제목은 그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의 정수를 한 줄에 압축한다. 그래서 이 인턴처럼 제목만으로 누군가에게 뼈아픈 돌직구를 날릴 수 있다. 반대로 그 제목이 영감이 돼 자신의 삶에 즉각적인 성찰과 변화의 자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내가 좋아하는 독서법 중 하나는 그래서 ‘제목 독서’다. 책 한 권을 다 읽으려면 아무리 빨라도 한 시간은 걸리지만 제목 독서는 눈으로 본 즉시, 완독 뒤 기대할 수 있을 법한 ‘실천적 각성’ 효과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코가 그려진 표지에 ‘호흡하는 법, 숨만 제대로 쉬어도 건강하다’고 써진 책을 봤다면? 보자마자 코로 심호흡을 해보게 된다. ‘함부로 칭찬하지 마라’라는 책 제목을 본 뒤라면 아이에게 영혼 없는 찬사를 늘어놓으려던 것을 잠시라도 멈춘다. 서점가에 쏟아지는 ‘저속노화’ 책을 반복해 접하다 보면, 그런 삶의 방식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어떤 책은 제목만으로도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라는 ‘원씽’은 사실 제목이 책 내용의 거의 전부다. 핵전쟁 종말 시나리오를 검토한 ‘24분’은 어떤가. 24분 안에 모든 게 끝날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런 경우는 제목만 봐도 교양이 쌓인다. 15년 차 대형서점 MD가 최근 독서 노하우를 집약해 펴낸 ‘책 고르는 책’에는 실제로 ‘표지 독서’라는 흥미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표지의 제목과 부제, 저자 소개, 뒷면의 발췌나 추천사 등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제목 읽기도 일종의 독서다. 책 읽을 때 강박적으로 생기는 ‘엄근진’ 모드를 잠시 내려놔도 괜찮단 뜻이다. 주말에 뭐 할지 고민이라면, 당장 가까운 서점으로 나가 매대와 책장에 꽂힌 수많은 제목들을 한번 훑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이유다. 그 한 줄 안에 담긴 수많은 영감, 정보, 조언들. 제목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한번 시도해 보면 아마 놀라게 되지 않을까.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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