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경쟁 심화 우려로 주춤했던 한미반도체 주가가 반등을 시도하고 있다. 내년 매출액 목표로 2조원을 제시하는 등 실적 개선에 자신감을 보이면서다. 다만 외국인·기관 등 큰손은 공매도를 통해 주가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한미반도체는 4.41% 오른 6만8700원에 마감했다. 이틀 연속 급등하며 11일 만에 6만8000원선을 되찾았다. 지난 10일과 11일 양일간 개인 투자자는 233억원, 기관은 57억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293억원을 순매도했다.
한미반도체, 저점 대비 18% '급등'
현재 주가는 52주 최저가 5만8200원에 비하면 18% 이상 높다. 지난 9일 장중 한미반도체는 급락하며 최저가를 갈아치웠다. 반도체는 미국이 지난 2일 발표한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일단 제외됐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품목관세 도입을 예고하며 반도체 업종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한미반도체가 사실상 독점하던 TC본더 시장에 균열이 생긴 점도 부담이 됐다. 한미반도체의 글로벌 TC본더 시장 점유율은 90%를 웃돈다. 하지만 한화세미텍이 점점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어 경쟁 체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14일과 27일 한화세미텍은 SK하이닉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용 TC본더 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HBM은 D램을 여러 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드는데, D램에 열과 압력을 가해 고정하는 공정에 TC본더가 쓰인다. 인공지능(AI) 시장이 커지며 고성능 반도체가 많이 필요해졌고, TC본더 수요도 덩달아 폭증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HBM 시장 규모는 지난해 182억달러(약 26조원)에서 내년에는 467억달러(66조8500억원)로 2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한미반도체는 기술력으로 난관을 극복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은 "후발 업체인 ASMPT, 한화세미텍과 상당한 기술력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TC본더 기술력과 미래 성장에 대한 자신감으로 사재로 자사주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곽 회장이 2023년부터 취득한 자사주 규모는 423억원에 달한다.
하반기 한미반도체는 플럭스리스타입(FLTC) 본더 출시를 앞두고 있고, 하이브리드본딩 장비도 일정대로 내년께 출시한다는 입장이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올해 하반기 AI 2.5D 패키지용 빅다이 TC 본더를 출시할 예정이다.
미국 매출 비중이 낮아 관세가 미치는 영향도 적다는 입장이다. 작년 한미반도체 매출의 58.6%는 국내에서 나왔다. 대만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22%, 15.5%에 달했다. 그 외 기타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3.9%에 불과했다.
신제품에 힘입어 올해 매출액 목표치는 1조2000억원을 제시했다. 작년 연결 기준 매출액이 5589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2배 이상 늘리겠다는 공격적인 계획이다. 나아가 내년 매출액 목표치로 2조원을 내세웠다. 회사는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 추정치로 1400억원, 686억원을 발표했다.
회사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외국인과 기관 등 '큰손'은 주가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공매도가 전면 재개된 후 세 차례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됐다. 한국거래소는 공매도가 비정상적으로 급증했거나 가격이 급락한 종목을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지난 11일 한미반도체의 공매도 거래대금은 443억100만원으로 국내 증시 1위를 차지했다. 전체 거래대금 대비 공매도 거래대금 비중도 16.77%를 기록했다. 공매도 전면 재개 후 한미반도체는 매 거래일 공매도 거래대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공매도 대차잔고도 증가세다. 지난 10일 기준 한미반도체 대차잔고는 1124만174주로 직전일 대비 21만1336주 늘었다. 금액으로는 7396억원에 달한다. 대차잔고는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빌린 주식 중에서 갚지 않은 물량을 의미한다. 대차잔고가 늘었다고 해서 반드시 공매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매도를 하기 위해 먼저 주식을 빌리기 때문에 대차잔고는 공매도 선행지표로 여겨진다.
한미반도체, '공매도 선행지표' 대차잔고 상승세
개별주식선물 만기일이 다가오며 주가가 하락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외국인은 개별주식선물을 현물 공매도로 전환하며 현물을 순매도하고 있는데, 만기일에는 순매도 흐름이 더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다.
신한투자증권은 개별주식선물 만기일 당일 수급 영향에 따른 주가 하방 압력을 받을 종목으로는 한미반도체, 아모레퍼시픽, 유한양행, SKC 등을 꼽았다. 시가총액 대비 미결제약정 규모·외국인의 개별 주식선물 매도 규모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선물가격과 이론가 사이 괴리율도 높았다.
조민규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2020년보다 길었던 공매도 금지 영향에 시가총액 대비 미결제약정 규모와 외국인의 개별주식선물 쇼트 포지션이 과거보다 확대됐다"며 "유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