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스턴 아이오와대 교수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장
‘35년 사제지간’ 美조선 난제 해결
미 해군 지원 공동 프로젝트 가동
미국 조선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설계 역량이 있지만, 생산 효율성 저하와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한국의 독보적인 제조 공정 노하우는 이를 타개하기 위한 묘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의 단초가 됐다. 이러한 양국 간 보완 관계는 최근 정부 차원의 공조를 넘어 학계에서도 활발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35년 전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어 연구를 지속해 온 프레데릭 스턴(Fred Stern) 아이오와대 기계공학과 교수와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장이 있다. 스턴 교수는 50년 이상 조선공학을 연구해온 세계적 학자다. 이 학과장은 전산유체역학을 활용한 선박 저항 및 추진 성능 최적화, 자율운항 선박 설계 등 차세대 조선 기술 분야 연구를 선도하는 석학이다.
최근 두 석학은 서울대학교에서 미 해군의 지원을 받는 ‘디지털 선박 설계와 설계-생산 통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공동 워크숍을 개최하며 차세대 선박 건조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매일경제는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두 학자를 만나 미국 조선업의 현실과 디지털 설계로의 전환, 그리고 인공지능(AI)이 가져올 조선 공학의 미래를 짚어봤다. 1500억 달러 규모 ‘한미 조선업 협력 펀드’의 바람직한 활용 방안과 실질적인 시너지 창출 전략에 대한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Q. 스턴 교수님이 이번에 서울을 방문하신 계기와, 서울대학교와 함께하는 워크숍의 주요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신형 교수) 전통적인 설계의 최우선 목적은 성능의 극대화에 있었습니다. 미 해군의 함정 설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의 과학기술을 총동원해 최상의 함정을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간과된 지점이 있었습니다. 최고의 성능에만 치중하다 보니 실제 건조 단계에서 뒤늦게 결함이나 문제점이 발견되는 사례가 빈번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 단계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막대한 시간이 지연되었고, 설계 자체가 지나치게 복잡해 생산 현장에서 과도한 인력과 공기가 소모되었습니다. 미 해군은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설계 단계부터 생산 효율성을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방식이 아닌, 생산 공정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반영할 수 있는 ‘디지털 설계’ 도입이 필수적입니다. 워크숍이 다루고 있는 ‘디지털 선박 설계와 설계-생산 통합’이 최근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Q. 현재 미국 조선업의 현주소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미국 조선업은 설계 역량은 뛰어나지만 생산 효율성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데, 이러한 격차가 발생한 핵심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 학과장) 미국 조선업의 생산 효율성이 저하된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설계와 생산 프로세스의 완전한 단절입니다. 생산 편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성능 위주의 설계만 이루어지다 보니 실제 건조 과정에서의 난도가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둘째, 함정 건조 물량의 감소입니다. 발주되는 척수가 적다 보니 조선소의 건조 역량과 노하우가 유지되지 못하고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심각한 인력 부족 문제입니다. 미 해군 함정 건조에 참여하려면 미국 시민권과 일정 수준의 보안 인가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조선업이 기피 산업으로 전락하면서 신규 인력 유입이 끊겼고, 기술 전수마저 단절되었습니다. 인력의 양적 부족과 질적 저하가 맞물리며 생산 효율성이 기대 이하로 낮아진 상황입니다.
Q. 한국 정부가 최근 미국 조선 산업에 약 1,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투자가 미국 조선 산업의 어떤 분야에 가장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이 학과장) 매우 복잡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양국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호혜적인 분야에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 측은 ‘해사번영구역(MPZ, Maritime Prosperity Zone)’ 내의 직접 시설 투자를 최우선으로 희망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한국은 대출이나 보증 형태의 금융 지원 방식을 선호할 가능성이 큽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현재 한미 조선 협력을 뒷받침할 통합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백악관 주도로 ‘해사 행동 계획(MAP, Maritime Action Plans)’을 발간할 만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부처 간 역할 분담이 모호합니다. 이 정도 규모의 사업은 특정 부처가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미국이 이를 ‘해사 산업(Maritime Industry)’이라 부르는 이유는 조선, 해운, 해군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역시 산업 논리를 넘어 국가 안보적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청와대 안보실이 중심이 돼 안보와 산업의 균형 잡힌 지휘 아래 정책을 추진해야 할 시점입니다.
Q. 실질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국과 미국 조선 산업은 어떤 분야에서 가장 현실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이 학과장)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분야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과학기술 협력입니다. 미국은 한국의 세계적인 생산 기술과 공정 노하우를 도입하고, 한국은 미국의 독보적인 첨단 원천 기술을 전수받는 기술 교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는 인력 양성입니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조선업이 위축되면서 관련 교육 기반이 거의 붕괴되었습니다. 조선업 재건을 위해서는 인재 양성이 시급하지만 가르칠 전문가조차 부족한 실정입니다. 반면 한국의 조선해양공학 교육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한국이 교육 인프라와 콘텐츠를 제공하고, 미국은 미래 첨단 기술에 대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구축한다면 양국 모두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Q: 두 분이 어떻게 이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스턴 교수)지금까지 제가 지도한 30명의 박사 중 15명이 한국 학생입니다. 이신형 교수도 35년 전 제가 가르쳤던 학생 중 하나입니다. 이 학과장이 미국에서 귀국 서울대의 교수가 된 후부터 우리는 국제 협력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주제로 3년 단위의 프로젝트를 세 차례 함께 수행한 바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저희는 ‘생산성(producibility)’과 ‘제조 가능성(manufacturability)’의 개념을 도입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의 동료가 핀칸티에리 조선소의 CEO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한국의 전문가와 이야기해보는 게 좋겠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당연히 누구와 이야기해야 할지 안다”라고 답한 뒤 바로 이 학과장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비용 절감, 공정 속도 향상, 그리고 새로운 설계를 확보하는 것이 명확한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군함이나 상선을 설계하는 기술은 어떻게 진화했나요?
=(스턴 교수) 이 학과장이 학생이었을 때 35년여 전, 그는 제 연구팀의 CFD(전산유체역학) 코드인 ‘CFDShip-Iowa’의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저는 ‘시뮬레이션 기반 설계(Simulation-Based Design)’라는 개념을 연구 중이었습니다. 고정밀 솔버(solver)를 CAD 프로그램 및 최적화 기법과 결합해 가상 설계를 구현하는 방식이었죠. 이를 통해 구식의 나선형 설계 루프(spiral design loop)나 ‘일단 만들고 테스트하기’ 식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디지털 디자인’으로 진화했습니다. 여기서는 전체 설계 프로세스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다중 정밀도(multi-fidelity) 기법을 사용합니다. 현대적인 머신러닝, 인공지능(AI), 다학제간 최적화 기법을 ‘디지털 디자인 휠(Digital Design Wheel)’ 안에 통합한 것이죠. 고객이 요구 사항을 제시하면, 디지털 디자이너는 이 휠을 사용해 가상 설계를 수행합니다. 이는 나선형 구조가 아니라 매우 상호작용적인 방식입니다.
Q. 50년 넘게 조선공학을 연구해 오셨는데, 향후 10년 동안 이 분야에서, 특히 AI와 관련해 어떤 큰 변화를 예상하시나요?
=(스턴 교수) AI는 이미 화두가 되었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은 아리스토텔레스(논리)에서 시작해 갈릴레오(관찰), 그리고 슈퍼컴퓨터로 구현되는 수리물리학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뮬레이션 기반 설계와 함께 고도의 컴퓨팅 능력을 개발하며 그 길을 걸어왔죠. 저는 물리 법칙과 방정식의 노예입니다. 그것이 제 커리어이자 정신적 토대니까요.
하지만 이제 AI가 나타나 방정식조차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AI는 답을 얻는 자신만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접근 방식은 수리물리학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결국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되지 않는 한, 저는 이 새로운 답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단계에서 AI는 실수를 하거나 출처를 지어내기도 하는 등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우리 미래의 큰 축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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