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同人 ‘월급 사실주의’ 세 번째 소설집… “평범한 사람들 먹고사는 문제 담아”

21 hours ago 2

동인 결성 뒤 한 번도 모이지 않고… 단체대화방도 없이 책으로만 대화
“앉아서 쓰면 다 티가 난다” 공감대
플랫폼업체의 별점에 전전긍긍 등
발품 팔아 노동자 애환 생생히 그려

동시대 노동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월급 사실주의’ 문학 동인. 2023년부터 매년 소설집을 내고 있다. 올해 소설집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에 참여한 예소연 김동식 조승리 이은규 황시운 황모과 서수진 윤치규 작가(위쪽 왼쪽부터). 문학동네 제공

동시대 노동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월급 사실주의’ 문학 동인. 2023년부터 매년 소설집을 내고 있다. 올해 소설집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에 참여한 예소연 김동식 조승리 이은규 황시운 황모과 서수진 윤치규 작가(위쪽 왼쪽부터). 문학동네 제공
‘세진’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 재택근무자다. 그의 업무는 주어진 키워드에 맞게 기사를 스크랩해서 비공개 카페에 올리는 단순 반복 작업. 하루 4시간 근무가 끝나면 담당자 다섯 명에게 일일업무 보고서를 전송한다. 하지만 메일은 늘 ‘읽지 않음’ 상태다. 회사는 장애인 의무고용 할당제를 채울 뿐,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관심이 없다. 세진은 쓸모없는 일을 지속해야 한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1일 출간된 소설집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문학동네)에 수록된 황시운 작가의 단편소설 ‘일일업무 보고서’의 줄거리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일의 쓸모’에 대한 고민을 다루면서, 실제로 장애인 재택근무를 겸업하는 작가의 경험도 담겨 묘사가 핍진하다.

‘내가 이런 데서…’는 특별한 점이 또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취지로 출범한 문학 동인(同人) ‘월급 사실주의’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장강명 작가가 2022년 6월 김의경, 정진영 작가와 합심해 기획했다.

작가들은 동인 참여를 원하는 11명이 모였을 때 여러 출판사에 직접 기획안을 보냈다. 이후 해마다 동인지의 성격을 띤 소설집을 내고 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먹고사는 문제를 다룬 한국 문학이 드물다는 공감에서 출발했다. 장 작가는 “2000년대 들어 한국 노동시장이 둘로 쪼개지던 시기에 그 실태를 사실적으로 알리고 비판한 작품은 소설보다 드라마나 웹툰이 먼저 떠오른다”며 “우리 시대 노동 현장을 담은 소설이 더 나와야 한다”고 했다.

이젠 사라지다시피 한 한국 문단의 동인이 등장했단 점에서 반갑지만, ‘월급 사실주의’는 상당히 느슨하게 운영된다고 한다. 결성 이래 단 한 번도 모이지 않았고, 단체대화방조차 없다. 모두 의도적으로, 서로가 만나는 동호회가 아니라 책으로 말한다는 취지다.

최근 ‘월급 사실주의’는 조용히 입소문이 나면서 작가들이 참여 의사를 밝혀오기도 한다. 황 작가도 이전의 두 소설집을 읽고 먼저 연락을 취했다. 황 작가는 “최근 문단에서 당대 현실에 대해 사실적인, 어떤 면에선 노골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쓸 수 있는 장(場)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소설집은 황 작가를 포함해 김동식 서수진 예소연 윤치규 이은규 조승리 황모과 등 8명이 참여했다. 새로운 구성원만큼 다루는 현장도 다양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모과 작가는 인공지능(AI) 시대를, 예 작가는 플랫폼 업체의 별점에 전전긍긍하는 등 노동자의 애환을 그렸다. 조 작가는 장애인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 서 작가는 해외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를 다뤘다. 다양성을 담아내는 동인 ‘월급 사실주의’에도 원칙이 없진 않다. 발품을 팔아 현장감 있는 소설을 쓴다는 목표가 있다. 원년 멤버인 정 작가는 “앉아서 쓰지 말자, 앉아서 쓰면 다 티가 난다는 게 공감대”라며 “동인 소설집 나올 때마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이렇게 많구나’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그동안 노동소설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이념적인 얘기 위주였거든요. 노동이란 단어 자체도 그런 느낌이 있고. 저희는 이걸 다른 식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진짜로 그 안에서 먹고사는 얘기를 그대로 보여주자는 취지죠.”(정진영 작가)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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