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객석과 무대를 잇는 수십 가닥의 흰 실. 객석 양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두 명의 여성 무용수는 양팔에 실을 감았다 풀며 천천히 무대로 향했다. 무대 위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떠 있는 지구 형상이 빛났고, 다섯 명의 무용수들은 하나의 고리에 묶인 채 몸부림치며 탈출을 시도했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 무대에 오른 창작무용 ‘몸 4개의 강’은 강렬한 인트로로 관객의 오감을 깨웠다. 일곱 명의 무용수는 거대한 원을 그리며, 250여 년 전 연암 박지원이 마주했던 극한의 두려움과 이를 넘어서는 여정 속으로 관객을 이끌었다.
‘몸 4개의 강’은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수록된 ‘일야구도하’(一夜九渡河)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최지연 창무회 예술감독이 안무를, 이재환이 연출을 맡았다. ‘일야구도하’는 연암이 열하에 도착하기 위해 오감에 의지한 채 하룻밤 동안 아홉 번 강을 건넌 여정을 기록한 글이다. 작품은 이 서사를 바탕으로 인간의 몸과 감각,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무용 언어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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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 무용 ‘몸 4개의 강’(사진=국립정동극장). |
이번 공연에서 단연 돋보인 것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인스톨레이션(설치미술) 형식의 공간 연출이었다. 기존 무대 앞으로 뻗어 나온 돌출형 무대는 무용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미세한 눈빛의 떨림까지 객석에 생생하게 전했다. 무대 전면은 물론 좌우 벽면을 가득 채운 일렁이는 물결 영상은 극장 전체를 깊은 물속으로 끌어들였다. 이 같은 연출은 관객이 연암과 함께 아홉 번의 강을 건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작품 제목인 ‘몸 4개의 강’은 인간의 머리와 가슴, 팔과 다리를 뜻한다. 여기에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오감)이 더해져 비로소 ‘일야구도하’의 험난한 여정이 완성된다.
무용수들은 팔과 다리를 힘껏 뻗고 굽히며 거친 물살에 맞서는 인간의 몸을 구현해냈다. 서로의 몸을 지탱하고 엉키며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은 험난한 여정을 떠올리게 했고, 일렬로 이어진 군무는 출렁이는 강의 흐름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남남, 여여 무용수가 서로의 등을 받친 채 물구나무를 서서 유영하는 대목이다. 마치 수면 위로 올라가려는 듯 허공을 향해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휘젓는 무용수들의 몸짓은 물살에 맞서는 인간의 생명력과 본능을 떠올리게 했다.
마침내 물길을 헤쳐 나온 일곱 명의 무용수는 거대한 원(圓)을 그리며 하나로 모였다. 격렬했던 움직임은 차츰 잦아들고, 이들은 서로의 몸 위에 차곡차곡 포개지며 하나의 형상을 완성했다. 서로에게 몸을 기댄 마지막 장면은 몸과 몸이 만나 관계를 맺고 연결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몸의 감각을 믿고 걸어가는 것은 용기 있는 행위다.”
작품 말미를 장식한 이 한마디는 긴 여운을 남겼다. 눈에 보이는 자극과 타인의 시선에만 매몰되기 쉬운 오늘날, ‘몸 4개의 강’은 자신의 몸을 믿고 삶의 강을 건너는 용기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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