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식 기행 : 유럽 최대 게임회사 유비소프트(Ubisoft) [EPA:UBI]
지난달 유럽 최대 게임회사로 꼽히던 유비소프트가 중국 IT·게임 기업 텐센트로부터 11억6000만 유로(약 1조8452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유비소프트는 자사 대표 게임 브랜드인 ‘어쌔신 크리드’, ‘파 크라이’, ‘레인보우 식스’ 전담 자회사를 설립하고 지분 25%를 중국 텐센트에 넘기기로 한 것입니다.
유로넥스트 파리에 상장된 유비소프트의 주가는 지난 11일 8.69유로에 마감했습니다. 현재 시가 총액은 11억4800만 유로(1조8601억원)입니다. 텐센트는 유비소프트 핵심 자회사 지분 25%를 구입하는데 그룹 전체 시총보다 많은 금액을 투입했습니다. 결국 무려 4배나 비싼 값을 주고 이 지분을 매입한 셈입니다
유비소프트가 자사의 핵심 게임 지식 재산(IP) 3종에 대한 독점 라이선스를 텐센트에 넘기기로 한 이유는 오랜 경영난으로 인한 재무 구조 악화 때문입니다. 유비소프트는 계약에 따라 2년간은 자회사 지분 과반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텐센트가 이후 지분율을 25%에서 과반까지 늘려 이 IP들을 완전히 품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텐센트는 2022년에도 약 3억 유로(약 4768억원)를 들여 유비소프트 지분 10%와 지주회사 기예모 브라더스 지분 49.9%를 취득했습니다. 이미 유럽 최대 게임사는 텐센트의 자본에 상당수 의존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미국, 중국에 맞선 유럽 최고의 게임사였던 유비소프트의 몰락은 꽤 오래전부터 진행됐습니다. 마치 천하 삼분지계를 꿈꿨다가 무너져내린 삼국지의 유비 같기도 합니다. 지난해 선보인 ‘스컬 앤 본즈’·‘스타워즈: 아웃로’ 등 대형 신작들이 연이어 시장에서 실패한 것이 직접적 원인입니다. 하지만 유비소프트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신작 게임들에 대해 부족한 게임성과 떨어지는 완성도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유비소프트가 신작 '스컬 앤 본즈'를 제작하는데 최대 8억5000만 달러(약 1조2463억원)의 비용을 투입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전에 알려진 2억 달러보다 상당히 높은 수치여서 충격을 줬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 게임은 수년에 걸쳐 완전히 다른 여러 버전이 만들어졌고, 이에 따라 엄청난 비용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유비소프트는 1986년 다섯 명의 기예모家 형제들이 부모가 물려준 통신 액세서리 업체를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로 탈바꿈시키면서 탄생한 회사입니다. 다섯 형제 중 막내인 이브 기예모가 현재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습니다.
유비소프트는 지금까지 1000개가 넘는 게임 타이틀을 발매했습니다. 인수합병을 통해 수많은 유명 IP를 획득하며 사세를 키웠습니다. 이들이 인수한 대표적인 IP 중 하나가 바로 ’페르시아의 왕자’입니다. 1990년대 PC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바로 그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고전입니다. 유비소프트는 2001년 판권을 획득하고 2003년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를 출시하며 부활시켰습니다. 이후 할리우드 영화로도 나왔습니다.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를 만들던 기술로 나온 것이 ‘어쌔신 크리드’입니다. 2007년 1편 발매 이후 유비소프트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유비소프트의 주요 작품인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 역시 2001년 레드스톰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해 획득한 IP입니다.
유비소프트는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11억 유로에 달하는 순부채를 갖고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즈의 분석가들은 “텐센트와의 거래가 2025년 말까지 마무리된다면 그룹의 부채 상황이 훨씬 더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비소프트의 주가는 지난 2018년 100유로 넘었고 2021년 초까지도 80유로를 웃돌았습니다. 하지만 주가가 7년 만에 10분의 1 이하로 쪼그라 든 것 입니다. 전문가들은 텐센트의 투자금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현재 주가가 많이 하락해 저평가된 상태라고도 말합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시장조사업체 CFRA는 목표 가격을 10유로에서 14유로로 상향 조정하고 투자 권고를 매도에서 보유로 바꿨습니다. CFRA의 애널리스트는 “텐센트가 유비소프트 자회사 지분을 그룹 전체 가치의 4배 주고 매입한 것”이라며 "현재 주가가 급락한 것은 경영진들이 몇몇 잘못된 판단을 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이어 “핵심 IP 자회사 설립으로 게임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