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세월이 하 수상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인상한다는 것 이외에 경제 뉴스가 메인으로 올라오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내우외환 속에서 국내 경제 이슈가 무슨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계속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우리 경제의 저성장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주목받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항상 떠드는 ‘몇십 년 후 한국 잠재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식의 거대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경제 성장의 이상 기류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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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경제 규모가 크고 경제 발전 단계가 높은 국가의 성장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한국 경제성장률은 미국보다 높아야 한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일시적으로 우리 성장률이 낮았던 경우도 가끔 있었지만 바로 반등해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 그러나 올해까지 포함해 3년 연속 한국 경제성장률은 미국보다 낮다. 이런 적은 없었다. 물론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이 나 홀로 호황을 누린 탓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것이 3년이나 이어지는 한미 성장률 역전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어쩌면 과거에는 한국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담보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무엇인가를 우리가 간과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아마도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 하나는 어떤 충격이 와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라는 DNA가 아닐까. 그동안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한국 경제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경제 주체들의 한결같은 ‘국난 극복의 의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 주체들의 생각이 모두 다르다. 2020년 팬데믹 이후 너무 오랫동안 경제 전반의 활력이 약화하고 삶이 팍팍해지면서 가계도 기업도 스스로의 생존이 최우선 목표가 됐다. 자영업자의 폐업률은 치솟고 일부 산업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이 쓰러지고 있다. 다시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리고자 하는 의지는 사라질 수밖에 없고 대부분 경제 주체들의 생각이 ‘숨만 쉬고 살자’에 매몰돼 있다. 둘째, 움츠리지 않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DNA가 사라졌다. 한때는 개도국이 부러워하는 한국형 성장 모델을 가졌고 그것은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졌다. 그 모델은 바로 확장성이다. 세계 육지 면적 순위 109위, 인구 순위 29위에 불과한 대한민국이 지금의 10위권 경제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밖으로 끊임없이 나가 성장을 가속하려는 노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동안의 경제 발전의 부작용을 치유하고자 확장보다는 사회 내 문제 해결에 몰두하면서 성장을 포기하고 분배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특히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특성에 맞는 모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면서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혼란만 가중시키는 상황에 처했다. 다른 사회의 제도에는 그들이 수천 년을 살아온 역사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가 집약돼 있다. 그들의 제도를 아무 생각 없이 한국 사회에 가져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중요시하는 DNA도 소멸됐다. 어떤 해외 커뮤니티에서 한국 사회에 대해 평하기를 ‘한국인은 한국인을 제일 싫어한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날이 갈수록 사회 내 정치 이념적 갈등, 세대 갈등, 노사 갈등, 남녀 갈등, 빈부 갈등 등의 대립 구도가 심화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이러한 갈등은 존재했었다. 그런데 지금이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느끼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분열돼야 하는지 한탄스럽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적’이라는 세태가 만연해 있다. 윈윈할 수 있는 ‘우리’라는 솔루션은 배제되고 상대가 망해야 내가 산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세상, 그것은 사회 문제를 넘어 결국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힘이 됐던 세 가지 DNA가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고 믿는다. 밖으로는 총성 없는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열강들이 서로 경제영토를 빼앗기 위해 난리를 치고 있다. 이번 전쟁에서 패하는 국가는 반드시 경제 열강의 식민지가 된다. 모든 힘을 모으는 총력전을 펼쳐 승전국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DNA를 반드시 복원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