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적을 수록 카드 수수료 부담 더 줄어
금융위·카드사 상생안 논의
연 매출 10억땐 20만원 경감
305만여곳 평균 8% 낮아져
순익감소 반발 카드사 고려해
요율조정 주기 6년으로 확대
수도권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연매출 2억원을 올리는 A씨는 내년 2월부터 매출액에서 쪼개 내는 카드 수수료 부담이 연간 100만원에서 80만원으로 20만원 줄어든다. 매출 규모가 4억원으로 더 큰 인근 B식당의 수수료 부담은 연 44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더 많이 준다.
17일 금융당국과 카드업계가 내수 부진에 벼랑 끝으로 몰리는 자영업자 상황을 의식해 영세·중소 가맹점 카드 수수료율을 낮추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8개 전업카드사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이 같은 내용의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감독규정 개정 작업을 마치고 내년 2월 14일부터 바뀐 수수료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당국은 카드업계 영업원가(적격비용)를 분석해보니 가맹점 수수료 부담을 연간 3000억원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번 수수료 개편안의 핵심은 이 경감분을 연 매출 30억원 이하 영세·중소업체에 고루 배분하겠는 것이다.
수수료율 조정액 수혜분(3000억원)은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 업체에 40%, 3억~10억원 이하 업체에 43%, 10억~30억원 이하 가맹점에 17%가 돌아간다.
이에 따라 신용카드 우대 수수료율은 연매출 10억원 이하 영세·중소 가맹점의 경우 0.1%포인트(0.5~1.25%→0.4~1.15%), 10억~30억원 이하 중소 가맹점은 0.05%포인트(1.5%→1.45%) 인하된다. 체크카드 우대 수수료율은 모든 영세·중소 가맹점을 대상으로 일괄적으로 0.1%포인트(0.25~1.25%→0.15~1.15%) 내린다.
예컨대 매출이 4억원인 가맹점은 연 40만원, 9억원인 곳은 90만원, 20억원인 업체는 120만원의 수수료가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신용카드 매출이 전체 매출의 80%, 체크카드 매출 비중이 20%인 경우를 가정한 수치다.
이번 우대 수수료율 인하 조치로 304만6000곳의 영세·중소 가맹점의 수수료 부담이 연평균 8.7% 줄게 됐다. 연매출이 1000억원 이하인 가맹점에 대해선 향후 3년간 수수료율은 동결하기로 했다. 최근 경기 부진에 어려워진 자영업자들의 경영 환경을 고려해 카드업계가 자발적으로 상생 방안을 마련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당국은 잇단 수수료율 인하 대신 카드업계를 달랠 수 있는 ‘당근’도 내놨다. 종전까지 카드업계는 적격비용 재산정 주기를 3년에서 5년으로 늘려달라고 당국에 요청했는데, 이날 당국은 이 주기를 거꾸로 6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수수료율 산출의 기준이 되는 적격비용 재산정 시기가 뜸하게 돌아오면 그만큼 수수료율 인하 압박도 낮아지게 된다.
금융위는 2012년부터 3년마다 적격비용을 재산정하면서 네 차례 연속 수수료율을 낮췄다. 이날 추가 인하 예고로 내년부터 다섯 차례 연속 요율이 낮아지게 됐는데, 그 대신 적격주기 확대로 화답한 것이다. 다만 대내외 경제 여건이나 소상공인·카드사 영업 상황이 달라지며 적격비용 재산정 필요성이 생긴 경우에는 3년 마다 검토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김 위원장은 “대내외 불확실성과 내수 부진으로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며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내년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을 마련했는데 이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신 카드업계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업계는 수수료율 추가 인하로 적자 부담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하면서도 적격비용 재산정 주기가 늘어난 데 대해선 환영의 뜻을 피력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재산정 주기 연장은 소상공인 보호라는 정책 목적을 감안해 합리적인 결정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선 “중장기적으로 재산정 주기 제도 유지 여부를 검토하면서 업계가 신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카드 결제 범위를 확대하거나 지급계좌 결제를 허용하고, 겸영·부수 업무를 확대하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금융위 관계자는 “그동안 카드산업 빅데이터 기반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마이데이터, 데이터 전문기관 지정 등 제도적 지원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향후 비대면 거래 확산 등 새로운 결제 환경에 맞춰 실물 카드 중심의 규제 체계를 디지털 시대에 맞게 개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