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한 서린 '홍릉'…100년 산림연구 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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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산과 숲의 의미와 가치가 변화하고 있다. 가치와 의미의 변화는 역사에 기인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화한 산을 다시 푸르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렵고 힘든 50년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산림청으로 일원화된 정부의 국토녹화 정책은 영민하게 집행됐고 불과 반세기 만에 전 세계 유일무이한 국토녹화를 달성했다. 이제 진정한 산림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산림을 자연인 동시에 자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데일리는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품 숲 탐장을 통해 숲을 플랫폼으로 지역 관광자원, 산림문화자원, 레포츠까지 연계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100회에 걸쳐 기획 보도하고 지역주민들의 삶을 조명하고자 한다.서울 동대문의 홍릉숲 전경. (사진=국립산림과학원)[이데일리=박진환 기자]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57에는 도심 속에서 찾기 힘든 이질적인 공간이 있다. 바로 ‘홍릉숲’이다. 홍릉숲은 1922년 임업시험장 설립과 함께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이자 임업연구의 본류이다. 국가산림문화자산 1호로 지정된 홍릉숲은 41.5㏊의 부지 내 총 157과 2035종의 국내외 식물이 자리하고 있다. 홍릉숲과 숲이 보유한 다양한 산림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시민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해부터는 평일 개방이 허용되면서 연간 30여만명의 방문객들이 홍릉숲을 찾고 있다. 서울 동대문의 홍릉숲 내 홍릉터. 명성황후의 능은 경기 남양주 금곡으로 옮겼고,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사진=박진환 기자)명성황후 능으로 출발…항일 장소로 인식 홍릉숲은 당초 숲과 수목원이 아닌 황후의 ‘능’(陵)에서 시작했다. 조선왕조사의 최대 비극이자 일제의 만행이 자행됐던 1895년(고종 32)년 을미사변으로 시해된 명성황후의 능이었다. 고종은 을미사변 후 1897년에 대한제국 명성황후로 추존한 뒤 청량리 일대에 ‘홍릉’(洪陵) 조성을 명했다. 1900년 홍릉에서 경기 남양주 금곡으로 능을 옮겼고 1919년 고종황제와 합장했다. 이후 이곳은 능이 있던 자리에 터만 남았지만 줄곧 홍릉으로 불리면서 망국의 한을 품고 있는 장소이자 항일의 역사적인 장소로 자리잡게 됐다. 홍릉숲이 임업연구의 산실로 변모하게 된 시점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이다. 조선총독부는 1913년 경기 포천 광릉과 서울 서대문 의령원에 임업시험소를 설치했다. 서울 동대문의 홍릉숲 변천사. (사진=국립산림과학원)임업시험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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