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드라마 ‘백년의 고독’-소설 비교
노란꽃 수천 송이 화면 채우고… 들판엔 CG 없이 마콘도 지어버려
‘420字’ 15곳 지나는 원작 부고문장
40초간 카메라로 따라가며 응시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 ‘마콘도’. 하늘에서 수천 개의 노란 꽃들이 천천히 내려온다. 거리는 노란 꽃들로 가득 찬다. 사람들의 발이 푹 잠길 정도로 거리엔 꽃이 쌓여 있다. 마을 사람들은 노란 꽃에 파묻힌 채 마을 설립자 ‘부엔디아’의 장례식을 치른다.지난해 12월 11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백년의 고독’ 파트1은 유명한 ‘꽃비’ 장례식 장면에서 화면 가득하게 진짜 노란 꽃 수천 송이를 채웠다. “거리가 폭신폭신한 요를 깔아 놓은 것처럼” 꽃비가 내렸다는 원작 소설의 장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소설에서 “장례 행렬이 지나갈 수 있도록 사람들이 꽃을 삽과 갈퀴로 치웠다”고 묘사한 대목은 노란 꽃 위로 행렬이 그대로 지나가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원작 소설이 지닌 ‘마술적 사실주의’(현실과 사실을 뒤섞는 문학 기법)를 영상으로 더욱 두드러지게 표현하려 했다.드라마는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가 1967년 발표한 동명의 원작 장편소설이 지닌 마술적 사실주의를 살려내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CG)을 최소화했다. 언뜻 CG가 더 필요할 것 같지만, 상상의 도시 마콘도를 거대한 들판에 진짜 도시로 지어 버렸다. 실제로 나무에다 둥지를 틀었고, 개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마을을 만들었다. 비행기 격납고 안에 만든 부엔디아의 집도 인상적이다. 격납고 천장에 조명을 달아 빛과 어둠이 수시로 바뀌며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느낌을 잘 표현했다.
소설의 기묘한 현상을 재현하기 위해선 ‘응시’를 택했다. 예를 들어 부엔디아의 첫째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침실에서 한 줄기 피가 문 밑으로 새어 나와 뱀처럼 나무 바닥, 흙길을 지나 어머니 ‘우르술라’에게 부고를 알리는 장면은 약 40초간 카메라로 조용히 따라갔다. 소설 속에서 한 줄기 피가 15개의 장소를 지나는 장면을 약 420자의 긴 문장으로 표현한 마르케스의 호흡을 카메라로 그린 셈이다.“한 줄기 피가 문 밑으로 새어 나와, 거실을 가로질러 거리로 나가, 울퉁불퉁한 보도를 통해 계속해서 똑바로 가서 … 우르술라가 빵을 만들려고 달걀 서른여섯 개를 깨뜨릴 준비를 하고 있던 부엌에 나타났다.”
마콘도 사람들이 처음 ‘얼음’을 보는 순간은 드라마에서 얼음에 자연광이 반사되도록 비춰 신비로움을 강조했다. 소설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로 표현된 얼음을 빛과 그림자의 대비로 강조해 종교적인 경험을 느꼈던 마콘도 사람들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소설 속 ‘유령’을 일반적인 드라마처럼 반투명한 CG로 표현하지 않은 것도 화제를 모았다. 이 유령은 부엔디아가 젊은 시절 자신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결투 끝에 죽인 옛 마을 사람이다. 드라마에선 실제로 배우가 피를 철철 흘리는 분장을 한 채 졸졸 따라다닌다. 그 덕에 살인의 끔찍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마르케스는 생전에 이 소설의 영상화에 반대했다고 한다. 자신이 빚어낸 마술적 사실주의를 제대로 구현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마르케스가 세상을 떠난 뒤 약 10년이 지나고 유족은 영상화에 동의했다. 콜롬비아 배우들이 다수 참여하고, 영화가 아닌 16부작 드라마로 만들어 방대한 서사를 제대로 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넷플릭스가 ‘나르코스’와 ‘로마’ 같은 히트작으로 남미 콘텐츠의 세계적 매력을 입증한 뒤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소설을 대규모로 각색하겠다고 (유족에게) 제안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 결과물은, 우리의 눈앞에서 아름답게 펼쳐졌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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