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자주 놀라게 하는 도널드 트럼프. 그는 자신만의 규칙에 따라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트럼피디아는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다양한 변화가 몰아칠 ‘트럼프 2.0 시대’에 트럼프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곳을 추적해보겠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는 ‘은둔의 영부인’으로 자주 불렸다. 그래서일까. 그가 회고록을 낸다는 소식은 적잖은 화제가 됐다. 의중을 도통 알 수가 없던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여겨졌다.
멜라니아 여사는 첫 회고록에서 유년 시절부터 최근까지 자신의 인생 전반을 다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해 11월 나온 회고록의 절반가량은 사진이고, 나머지 절반은 은근한 자기 자랑, ‘배신자’에 대한 비난, 언론에 대한 불신이 주된 내용이다.
256쪽 길이의 회고록을 읽으면 그가 절대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회고록을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성과를 나열한 ‘자기소개서(CV)’ 같다고 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연가’라고 평가했다. 멜라니아 여사의 회고록과 과거 인터뷰, 주변인의 인터뷰, 미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멜라니아 여사는 어떤 성격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인지 살펴봤다.● 당차고 밝은 성격의 집순이 모델
멜라니아 여사는 유고슬라비아(현 슬로베니아) 출신 이민자다. 그녀의 본명은 멜라니아 크나브스(Knavs). 사업가 아버지와 패턴사 어머니 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한다. 서유럽 출장을 자주 다녀오던 어머니가 가져온 패션지를 보며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다. 16세에 길거리에서 캐스팅되며 모델로 진로를 틀었다.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다 중퇴한 후 1992년 서유럽으로 이주했다.고등학교 시절 멜라니아 여사는 ‘집에서 친구 서너명과 주스를 마시며 수다 떠는 게’ 낙이었다고 한다. 그의 고등학교 동창들은 “멜라니아는 예쁜 모델이었지만 좀 특이했다. 파티에 다니질 않았고, 남자들에게 주목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잡지 GQ에 말했다.
4년간 서유럽에서 모델 활동을 하던 멜라니아는 에이전트의 제안으로 1996년 미국 뉴욕에 진출했다. 밤마다 시끌벅적한 파티가 열리는 뉴욕에서도 비슷한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여러 차례 화보 작업을 같이 한 사진가 안토인 버글러스는 WP에 “멜라니아는 화려한 연예계 생활과 거리를 뒀다. 평범한 아파트에 살았고, 남자친구도 없었다. 우리 업계에서 아주 보기 드문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멜라니아 여사와 트럼프 대통령 모두 술과 담배에 손도 안 대는 사람이었다. 멜라니아 여사는 회고록에서 “우리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공통점으로 빠르게 가까워졌다”고 적었다.
이런 멜라니아 여사를 두고 미 언론은 ‘집순이(homebody)’라고 표현했다. 잡지 뉴요커는 그에 대해 “수녀처럼 산 모델”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멜라니아 여사는 자신이 구축한 세상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또 남편처럼 충성심을 중시해 이너서클에 극소수의 인원만 허용한다고 한다.
사실 멜라니아 여사는 밝은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눈을 살짝 찡그린 차가운 표정은 ‘대외용’이라고 한다. 공과 사를 완벽히 구분하는 그의 완벽주의 성향도 엿볼 수 있다.
7년 전인 2018년 트럼프 부부의 프랑스 방문 직후 이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여사는 르몽드 인터뷰에서 “멜라니아는 정말 많이 웃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중 앞에서는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당찬 성격(une forte personnalité)을 숨기려고 무척 애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이 세밀하게 관찰되고, 지나치게 의미 부여가 된다”며 멜라니아 여사가 공식 석상에서 우울해 보이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 “남편과 아들 챙기느라 여력이 없어요”
멜라니아 여사가 커리어에 대한 야망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모델로 성공하기 위해 1992년 서유럽으로 갔다. 이주에는 1991년 슬로베니아(당시 인구 200만 명)가 유고슬라비아(인구 2350만 명)에서 독립한 사건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 멜라니아 여사의 유년 시절 친구는 “멜라니아는 서유럽으로 떠나며 더 큰 기회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잡지 GQ에 전했다.멜라이나 여사는 아들 배런이 어느 정도 큰 2010~2013년경 주얼리와 화장품 사업을 했다. 그러나 우선순위는 남편과 아들이라는 점을 늘 강조했다. 2013년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그는 배런이 최우선이라며 주말 일과를 설명했다. 당시 멜라니아 여사는 43세, 남편은 67세, 배런은 7세였다.
“주말에는 종일 라이드를 해요. 아침에는 야구장 데려가고, 친구 집, 골프 레슨, 테니스 레슨 태우고 다니다 보면 주말이 다 가 있어요. 애칭은 ‘리틀 도널드’에요. 배런은 아빠처럼 정장을 입는 걸 좋아해요. 귀엽고 활발한 아이예요.”
둘째 계획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절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정말 바쁘게 살고 있어요. 우리 가족은 행복하고, ‘빅 보이(남편)’랑 ‘리틀 보이(아들)’ 챙기느라 여력이 안 될 거 같아요.”
멜라니아 여사는 집안 관리엔 수십 명의 직원을 고용했지만, 배런만큼은 직접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부모도 배런을 봐주러 슬로베니아에서 뉴욕으로 이주했다. 배런도 슬로베니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한다.
영부인으로 지내며 멜라니아 여사는 배런을 위해 관례를 거스르는 선택도 주저하지 않았다. 2017년 남편의 취임 직후에도 배런의 교육을 위해 뉴욕에 남는 초유의 선택을 했다. 학기 중에 전학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가 취임 16개월 만에 내놓은 사이버 왕따 예방 캠페인 ‘비 베스트(Be Best)’도 배런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 경험 때문에 준비했다고 한다. 멜라니아 여사는 캠페인 출범을 코앞에 두고 2018년 미국에 방문한 브리지트 여사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으며 “내게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장미셸 블랑케르 전 프랑스 교육장관이 낸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이다.
● 그래도 회고록이 알려준 것들
멜라니아 여사는 회고록에서 영부인으로 어떤 다짐을 하고 백악관에 들어갔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요즘처럼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세상에서는 재클린 케네디 여사 같은 사람도 이미지를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섬세하게 조율한 완벽한 모습만 대중에 보이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전통을 존중하며 나 자신에게 진실된 영부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만의 기준과 믿음을 따라 ‘마이웨이’를 가기로 했다.”
그가 영부인으로서 선택한 길이 무엇인지 콕 집어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잠행’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랬던 그가 세상으로 나오고 있다.
멜라니아 여사는 최근 자신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그가 제작에 응한 데는 편집권을 전적으로 갖는 파격적인 조건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큐멘터리에 담기는 자신의 이미지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 것. 연내 공개되는 다큐멘터리가 회고록처럼 멜라니아 여사의 ‘완벽한 모습’만 다룰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회고록을 통해 예측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반(反)이민 드라이브와 관련된 내용이다. 적어도 멜라니아 여사의 회고록을 토대로 보면 불법 이민자 아이와 부모를 분리해 수용하는 ‘가족 분리 정책’만은 현실에서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정책은 1기 때 도입했으나 큰 지탄을 받으며 시행 2개월 만에 중단됐다. 멜라니아 여사는 회고록에서 이 정책이 철회된 것은 자신의 공이라고 강조했다. 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나는 이 정책에 대해 보고받은 적이 없어 전혀 몰랐다. 비서실장에게 현장 상황을 파악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도널드와 대화했다. ‘아이들에게 큰 트라우마가 될 것이기에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살펴보겠다고 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행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설명했다.”
물론 남편의 정책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강력히 옹호했다. 자신이 아이들과 직접 만나 대화한 결과 “아이들은 모국의 범죄 카르텔이 만든 해로운 환경 때문에 궁극적으로 가족과 헤어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설계해 시행한 정책이나, 뜬금없이 외부로 화살을 돌린 것이다.
회고록 전반에서 드러난 이 같은 모습을 두고 디애틀랜틱은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멜라니아는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며 느끼는 고통, 세상사가 주는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됐다. 그녀의 마음엔 자기애가 충만하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다.”
4화 요약: 멜라니아 여사는 밝은 성격의 집순이라고 한다. 완벽주의 성향인 그는 영부인이 되자 외부 노출을 최소화했다. 2기에서는 남편의 기세를 등에 업고, 통제권을 쥔 일부 대외활동에만 나설 전망이다.
5화 예고: 며칠 전 연설에서 “(집권 1기 때) 한국이 세탁기를 덤핑해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 그는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최근 발언과 1기 참모들의 회고록을 통해 살펴봤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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