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의성이 영화 '로비'에서 이른바 '개저씨'라 불릴 정도로 비호감 캐릭터를 연기한 것에 대해 "내 또래 남성과 동지들이 반면교사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8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김의성은 영화 '로비'에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결과물이 제 예상을 뛰어 넘을 정도의 비호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하정우의 세 번째 연출작인 '로비'는 연구밖에 모르던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이 4조 원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생 첫 로비 골프를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산행', '서울의 봄', '미스터 선샤인' 영화 '로비'에서 김의성은 부패 비리에 찌들어 있는 조장관의 남편 최실장 역을 연기했다. 최 실장은 청렴하다고 소문이 나 있지만 딱 하나, 잘 나가는 골프 프로 진프로(강해림)의 열렬한 팬으로 음침한 마음을 숨기고 있다.
김의성은 최실장 캐릭터가 비호감이라는 평가에 대해 "캐릭터 자체보다는 하정우 감독 스타일의 영화를 잘 소화해 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말로 하는 코미디를 해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걱정이 됐고, 저는 재미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캐릭터가 납득이 안 되고 이해할 수 없으면 배역을 맡을 수 없으니까, 하기로 결정한 다음에 이 사람을 좋아하려고 애썼다. 전반적으로 이 또래 남자중에 괜찮은 사람이라고 최선을 다해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일하지만 강력한 약점은 누구 한 사람을 너무 혼자 좋아했기 때문에 자기 마음 속에서 망상이 커져서 실제로 만났을 때 실수들이 터져나오는 것"이라며 "최선을 다해 이 사람에게 멋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좋은 이야기 해주고 싶고 만들고 싶은 사람을 열심히 연기했다"고 강조했다.
김의성은 "결과를 보니까 너무 더럽고, 예상보다 더 비호감이었다"며 "하 감독은 그걸 예상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매 작품 마다 강렬한 캐릭터로 대중의 눈도장을 받았던 김의성은 이미지가 고착화 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은 없었다. "이제와서 그런 걱정은 안 한다"며 웃었다.
김의성은 "예전에 연기 공백이 있다가 다시 시작했을 때 한 선배가 '이미지 고정되는 걸 두려워 말라'고 하더라. '이미지가 고정된다면 또 다르게 너를 쓰는 영리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떠올렸다.
아울러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미지가 고정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라며 "아무 이미지도 대중에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식으로든 각인 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니 그런 면에서 불만은 없다"고 털어놨다.
하정우 감독이 영화 '로비'에서 김의성을 영리하게 사용했느냐는 질문엔 "아니다. 기존의 이미지를 잘 이용해 먹은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부산행'은 판타지에 가까운 악역이었다. 전형을 끌어낼 만큼 악의 화신이었고, '미스터 선샤인'이나 '서울의 봄'은 역사 속 특정 인물을 끄집어 내서 기능적인 성격이 강한 악역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로비'에서 연기한 최 실장은 현실적인 기시감 같은 게 있을 수 밖에 없는, 특히 젊은 여성들한테 '아 저런 사람 주변에 있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캐릭터라 타격감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김의성은 비호감의, 개저씨 캐릭터에 대해 일말의 애정이 있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똥 더러워' 하면서 즐기는 스타일"이라며 "그런 대상이 되는 쾌감도 있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고 했다.
아울러 "인간 김의성으로서는 제가 맡는 어떤 역할이 제 또래, 가까운 남성 그룹, 동지들에게 반면교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이번 연기의 포인트는 멋있게 보이려고 애썼다. 일상에 살면서 멋있게 보이려고 하다가 저렇게 보이게 되는거 아닌가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사회 전체에 끼치는 해악을 줄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김의성은 최 실장에게 묘한 매력이 있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고위공무원 치고는 깨끗하고 자기 자부심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대체로 공정하려고 노력한다. 이 정도면 일에선 나이스한 사람"리아고 했다.
이어 "단 하나 비극적 결함은 한 사람을 너무 사랑하는거다. 비극적 결함이 인물을 풍성하고 폭을 크게 해준다. 10테라 이상의 영상을 저장할 정도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자기 안의 집착이 싹텄는데, 대상을 직접 만나게 됐을 때 어떤 파국적 코미디를 만들었는가. 너무 매력있고 재밌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정우 감독 스타일의 코미디를 가능한한 의식하지 않고, 웃음을 위한 장치들이 있지만 이 인물에 정공법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로비'는 오는 4월 2일 개봉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