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같은 옷을 만들어줄 수 있나요?” 미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랄프 로렌이 남성복을 만들기 시작하자 여성들이 그에게 물었다. 보헤미안과 디스코 문화의 인기로 화려한 여성복이 주를 이루던 1970년대 여성들은 색다른 스타일에 목말라 있었다. 그 갈증을 해소해준 디자이너가 바로 미국 뉴욕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랄프 로렌이다.
“클래식은 늙지 않는다.” 랄프 로렌은 이 말을 전 세계에 실현해 보였다. 1967년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서 넥타이 사업을 시작한 그는 60여 년간 자신만의 미학을 이어왔다.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그는 당대 인기 남성복 브랜드 브룩스 브라더스 매장에서 일하며 패션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67년 올드 할리우드의 매력을 반영한 남성용 넥타이 브랜드를 론칭하며 랄프 로렌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옥스퍼드 셔츠와 블레이저, 치노 팬츠 등 미국 명문대생의 패션과 승마·폴로로 대표되는 영국의 귀족 문화를 남성복에 차용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그는 옷을 하나의 매개체로 바라봤다. 평범한 일상에서 입는 옷이 패션을 넘어 각자의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사람들은 랄프 로렌의 헤링본 재킷을 걸치는 순간 영국 시골 저택에서 승마를 즐기는 귀족을 떠올렸고, 숄칼라 슈트를 착용한 후엔 흑백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처럼 랄프 로렌은 옷 자체보다 그 옷이 품고 있는 서사와 이야기를 강조해왔다. 이 철학은 1972년에 선보인 여성복 컬렉션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랄프 로렌의 아내 리키(Ricky)는 시중의 여성복 대신 그의 셔츠나 재킷을 빌려 입곤 했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랄프 로렌만의 여성복 스타일을 구축해나갔다. 1972년 5월, 뉴욕 55번가의 한 아파트 건물에서 여성복의 새로운 세계가 시작됐다.
영국 테일러링의 성지인 ‘새빌 로(Savile Row)’ 스타일에서 착안한 정장 재단법을 여성복에 그대로 적용하고, 남성복에 주로 쓰이던 체크 패턴 등을 과감히 사용한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첫선을 보인 가을 컬렉션부터 2025년 가을 컬렉션까지 53년에 걸친 방대한 역사가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보랏빛 천으로 감싼 뒤 은색 레터링을 더한 양장본 책에는 랄프 로렌이 선보인 100여 개의 컬렉션이 1300장 이상의 오리지널 런웨이 사진과 함께 실렸다. 또한 브랜드의 역사와 각 컬렉션의 하이라이트, 패션계에 미친 영향을 수록해 그의 창작 여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했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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