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대출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근 한 달 사이 0.3~0.4%포인트씩 낮아졌다. 올해 하반기 도입한 은행권의 자체적인 대출 제한 조치도 조금씩 풀리는 중이다. 새해엔 대출 규제가 완화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면서 은행 영업점은 내년 실행분 대출을 신청하려는 ‘예비 차주’로 북적이고 있다. 2금융권 가계대출 증가폭이 4년 만에 최대를 기록한 가운데 은행권 대출 문턱이 더 낮아지면 새해 가계부채 급증 문제가 다시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5대 은행 모두 주담대 금리 낮춰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최저금리는 한 달 전과 비교해 일제히 0.3~0.4%포인트씩 하락했다. 이날 국민은행의 주기형(5년) 주담대 금리는 연 3.76~5.16%로, 1개월 전인 11월 12일(연 4.12~5.52%)과 비교해 0.36%포인트 낮아졌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의 주담대 최저금리는 연 4.18%에서 연 3.83%로 0.35%포인트 떨어졌다. 하나은행은 연 3.74%에서 연 3.43%로 0.31%포인트 하락했다. 우리은행의 주담대 최저금리 역시 지난달 12일 연 4.42%에서 이날 연 4.12%로 낮아졌다. 농협은행도 연 3.72%에서 연 3.34%로 0.38%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은행권 주담대 금리가 최근 하락한 이유는 주담대 금리를 산정하는 근거 지표인 은행채 금리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년 만기 은행채(무보증·AAA) 평균 금리가 지난달 11일 연 3.253%에서 이달 11일 연 2.934%로 한 달 사이 0.319%포인트 하락했다.
한 시중은행 자금운용 담당 임원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치솟던 미국 국채 금리가 지난달 중순 이후 다소 안정됐고,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2회 연속 내리면서 국내 은행채 금리가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계대출 급증 우려”
은행들은 지난 9월 이후 도입한 자체적 대출 제한 조치들도 완화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15일부터 비대면 방식의 주담대와 전세대출, 신용대출 판매를 모두 중단했는데, 이날부터 주담대와 전세대출의 비대면 판매를 재개했다. 우리은행도 그동안 중단해온 비대면 주담대와 전세대출 판매를 오는 23일부터 시작할 방침이다.
은행들이 가계대출 제한 조치를 완화하는 이유는 내년엔 올해와 다른 기준의 가계대출 규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은행별 연간 가계대출 증가폭을 기준으로 은행에 제재를 가하는데, 새해가 되면 내년 목표치에 근거해 가계대출을 늘려도 되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직 내년도 가계대출 증가폭 목표치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올해 말 기준보다는 늘어날 것”이라며 “늘어난 목표치에 따라 내년 초엔 현재보다는 대출 제한 조치를 완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낮아진 대출 문턱이 가계부채 급증 문제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은행권 대출 제한 조치가 2금융권 대출 급증으로 이어지는 풍선 효과가 뚜렷할 정도로 대출 수요가 여전히 크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2금융권 가계대출 월간 증가액은 3조2000억원으로 2020년 11월 이후 4년 만에 최대였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