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캔슬 컬처’의 또 다른 장 열어젖혀
대통령, 주요 부처, 여당의 동시 집중포화
선거 앞둔 진영싸움 번지면서 반발-역풍
과잉 정치가 되레 5·18 가치 수호 약화
대통령이 나서고 장관이 보태니 정부 부처들이 밑에서 따라오는 건 수순이었다. 행정안전부가 국민참여 행사에 쓰던 스타벅스 상품권 지급을 중단한다는 방침을 밝혔고, 국방부는 격오지 장병을 위한 음료 지원 등 협력사업을 미뤘다. 보건복지부가 시니어 바리스타 교육사업을 중단하는 등 유사 조치가 이어졌다. 탱크데이 사건 수사에 나선 경찰은 휴일에도 출근해 법리를 검토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정청래 대표의 비판이 나오자마자 당내 스타벅스 출입 자제령이 떨어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질타가 쏟아지고, 스타벅스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이에 맞서듯 커피 인증샷을 올린 뮤지컬 배우는 무대에서 하차하고, 머그잔을 망치로 찍어 산산조각내는 퍼포먼스가 진행되면서 전국이 들썩거렸다. 스타벅스 매출이 일주일 만에 84억 원 줄었다는 분석 수치가 나왔다. 기업으로선 당해낼 재간이 없다.
스타벅스를 향한 이토록 격렬한 응징은 한국판 ‘캔슬 컬처(cancel culture)’의 또 다른 장을 열어젖힌 것이라고 본다. 2020년 미국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불붙은 캔슬 컬처는 특정 기업이나 인물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을 때 대중이 SNS 압박과 구매 보이콧 등으로 가하는 일종의 사회적 제재다. 우리말로는 ‘등돌림 문화’로 완역되는 미국의 캔슬 컬처는 인권침해의 아픈 역사인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듯 보이거나 인종차별로 문제가 된 대상에 특히 집중적으로 이뤄져 왔다.스타벅스처럼 기업이 광고나 제품에 ‘교묘하게 메시지를 심었다’고 비판받은 사례들도 있었다. 펩시는 시위대를 진압하던 무장경찰이 웃는 얼굴의 여배우에게 콜라를 건네받은 뒤 갈등이 풀리는 내용의 TV 광고를 내보냈다가 반발을 샀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를 가볍게 여기고 조롱했다는 이유였다. 나이키는 미국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선보인 한정판 운동화가 문제가 됐다. 독립선언에 나섰던 13개 주(州)가 썼던, 13개의 별로 구성된 옛 성조기 디자인을 운동화에 넣었는데 이것이 당시 흑인 노예제를 옹호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두 회사는 즉시 사과하고 각각 광고 중단과 제품 철회 조치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이 기업 때리기에 나서거나 정부가 불매운동에 앞장서는 모습은 없었다. 시민사회와 일반 소비자들이 움직였고, 이들은 “의도치 않았던 결과를 낳았다”는 회사의 설명과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후 매출에는 영향이 없었음이 데이터로 확인된다.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국내 스타벅스 대응에는 정치가 작동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과거 ‘멸공’ 발언과 그의 우파적 정치 행보가 소환됐다. 6·3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경쟁적으로 스타벅스를 공격하면서 상황을 증폭시켰다. 정 회장의 사과를 “진정성 있다”고 했던 민주당 대변인이 하루 뒤 경솔했다며 기존의 사과 평가를 사과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악질 장사치의 패륜 행위” “사람의 탈을 쓰고는 할 수 없는 일” “비인간적 막장 행태” 같은 표현을 쓰며 세 차례 비판을 이어간 이재명 대통령도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치권이 스타벅스를 엄중히 꾸짖는 선에서 그쳤다면, 소비자와 시민사회가 알아서 대응하도록 했다면 이 건이 이렇게까지 정치 이슈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내 커피를 내가 선택할 자유”를 외치며 스타벅스 인증샷 릴레이에 나서는 진영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5·18 유가족과 피해자의 분노에 숟가락을 얹으려던 얄팍한 계산이 결과적으로 이들의 아픔만 더 건드리게 되는 건 아닌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조롱이나 왜곡을 막겠다는 노력이 민주주의의 핵심인 개인의 자유 훼손 논란을 부른 것도 아이러니다.상황 전개를 지켜보던 다른 기업들은 마케팅에서 오해를 살지 모를 ‘역사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주요 사건사고와 참사 일지를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점검해야 할 체크포인트다. 다만 이를 걸러낼 사회적, 역사적 감수성은 정치인들이 기업 팔을 비틀어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감정이 앞서는 과잉 정치는 역효과를 낼 뿐이다.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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