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원호]고독을 견딜 용기

16 hours ago 3

초연결사회가 지워버린 내면의 거리와 성찰
분노를 계속 공급하고 증폭시키는 포퓰리즘
고독은 나와 나 자신이 장시간 나누는 대화
고독 견딜 용기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힘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스마트폰 없이는 화장실에조차 가지 못하는 일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잠시도 고독을 견딜 수 없게 된 탓임을 최근 깨달았다. 나만의 증상은 아닌 것이, 2014년 ‘사이언스’에 실린 한 실험에서 피험자들은 15분간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느니 차라리 자신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초연결사회’-과잉연결사회라 해도 좋겠다-는 본래 낙관론 위에 세워졌다. 더 많은 사람이 늘 연결돼 있다면 사회가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였고, 2010년대 초반 ‘아랍의 봄’은 그 낙관론의 현실적 증거처럼 보였다. 트위터(현 X)로 사람들이 모이고, 신문과 방송 없이도 시위 소식이 실시간으로 퍼지며, 부패한 독재정부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습에서 ‘기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낙관론을 이때만큼 실감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 후 10여 년간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는 퇴행했다. 더 많은 정보가 유통된다고 시민의 식견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며, 더 많은 의견이 교환된다고 이해와 관용이 깊어지기는커녕 악의와 미움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결은 진실뿐 아니라 거짓을 유통했고, 연대뿐 아니라 적대도 조직했다.

그 퇴행의 문법은 단순하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오래 생각하게 하는 주장 대신 즉각 분노하게 하는 주장을 공급하고,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이미 믿는 것을 증폭한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엇을 보고 누구에게 화를 낼지는 미리 정해져 있다. 포퓰리즘의 핵심은 기존 질서 전체-‘레거시’ 언론, ‘기성’ 정치제도, ‘전통적’ 지식인, ‘비대한’ 관료-를 부패하고 무능한 것으로 묘사하며, 오직 자신만이 ‘진정한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데 있지 않은가.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들이 모두 타도된 뒤에는 더 이상 권력을 견제할 주체가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맞이한 위기는 제도의 위기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찬성과 반대, 우리와 그들로 갈라지면서 시민 각자가 권력과 군중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판단할 내면의 거리마저 지워지고 있다. 이 내면의 거리를 ‘고독’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 해나 아렌트는 홀로 있되 자기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상태를 고독이라 부르고, 타인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며 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린 상태를 외로움이라 불렀다. 그가 전체주의의 토양으로 지목한 것은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이었다. 초연결사회의 역설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외로움을 지우기 위해 끊임없이 접속하지만, 그럴수록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능력, 곧 고독의 능력을 잃어간다.

고독은 세상을 등지는 일이 아니라, 세상의 목소리로 가득 찬 내면에 잠시 빈방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 방에서 타인의 언어와 자신의 생각을 구별하고, 내가 믿는 것과 믿도록 이끌린 것을 가려내는 일이다. 19세기 초 빌헬름 폰 훔볼트 이래 대학의 이념이 ‘고독과 자유’를 나란히 놓은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은, 자유가 외부의 명령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면 고독은 그 자유로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묻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또한 그런 고독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체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판단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체제다. 그래서 환호를 잠시 보류할 자유, 분노에 곧장 합류하지 않을 자유, 무엇보다 상대방뿐 아니라 내 편의 잘못도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다. 포퓰리즘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는 목소리가 큰 시민이 아니라, 군중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라고 묻는 시민이다.

물론 연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연결은 외로운 사람들에게 만남을 주었고, 흩어진 지식을 모았으며, 오래 침묵해야 했던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었다. 문제는 연결 자체가 아니라 연결밖에 남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접속할 자유만 있고 접속하지 않을 자유가 없다면, 그것은 이미 자유라 부르기 어렵다.

고독을 견딘다는 것은 결국 자유를 견디는 일이다. 누군가 정해준 답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일이라 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더 촘촘하게 연결되는 법을 이미 충분히 배웠으며, 이제 익혀야 할 것은 혼자 사유하는 법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장소는 의회나 광장이 아니라, 홀로 생각하는 한 사람의 고요한 마음속이다. 그 첫걸음은 어쩌면, 스마트폰을 버려두고 나와의 대화를 위한 그 고독의 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작은 용기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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