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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질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만기친람(萬機親覽)이라는 말이 있다. 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핀다는 뜻이다. 다만 아무리 뛰어난 군주라 해도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할 순 없다. 거의 유일한 예외는 세종대왕이다. 한글창제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탁월한 천재적 군주였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만기친람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유능한 인재를 발탁해 적재적소에 중용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표현은 통치의 핵심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인재를 찾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만 고위 공직을 고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배우자들의 반대였다. “고맙습니다만 와이프가 반대해서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후일담이 적지 않을 정도다.
이재명정부 1기 내각의 얼개가 드러냈다. 현역 의원 출신의 정치인 장관 후보자가 8명이다. 내각제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이채롭다. 또 하나는 LG, 네이버, 두산 등 현장을 잘 아는 기업인 출신의 중용이다. 마지막 포인트도 흥미롭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등 윤석열정부 고위 공직자를 유임했다. 이념보다는 실용을 중시하는 이 대통령의 성향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국회 인사청문회다. 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자의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하기 위한 제도다. 과거 김대중정부 시절 도입된 이후 참여정부 시절 청문대상에 장관이 포함됐다. 이는 대통령의 과도한 인사권을 합리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역대 인사청문회에서 나타난 후보자들의 낙마 사유는 대체로 비슷했다. △세금탈루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병역기피 △논문표절 △음주운전 △성범죄 등이었다.
다만 절대적 기준은 없었다. 여야의 창과 방패는 정권교체 유무에 따라 수시로 뒤집혔다. 매번 자진사퇴 촉구나 국정 발목잡기라는 설전이 오갔다. 끝없는 내로남불의 연속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모두 오십보백보다. 보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대한민국 인사청문회 시스템은 고약하기 이를 데 없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는 속담 그대로다. 정말 모든 것을 탈탈 털어댄다. 아무리 멘탈이 강한 사람도 제대로 버티기 어렵다.
특히 지난 2019년 조국사태 이후 자녀 문제까지도 사실상 인사청문의 대상이 되면서 상황은 극단적으로 악화됐다. “조폭도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한국식 관용의 미덕이 무너진 것은 물론 연좌제를 금지한 현행 헌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장면이었다. 이후 모든 청문회는 망신주기식 신상털이 폭로장으로 변질됐다. 이런 식이라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다 해도 낙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스개가 나온다.
역대 정부 조각 과정에서 인사청문회 시즌이 종료되면 과도한 사생활 침해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그때뿐이다. 망신주기 청문회는 ‘흙속의 진주’들이 세상에 나서기보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책은 현 여야 모두 과거 집권시절 제시한 바 있다. 이번에는 실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