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연휴 때 고향인 춘천에서 가족들과 영화관에 갔을 때 얘기다. 번화가에 자리 잡은 큰 빌딩의 1층 상가인데도 공실이 넘쳐났다. 오가는 이가 많지 않아서인지 2층 영화관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가 멈춘 상태였다. 이 영화관마저 조만간 문을 닫을 것이란 소문이 돈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지방 경기 침체의 단면이었다.
가려진 리스크 요인들
올해 들어 코스피지수 5000 시대가 열리고 ‘육천피’를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실물 경기는 얼어붙어 있다. 증시 호황이 반도체 등 몇몇 초대형 수출업종에 쏠려 있는 데다 국가 경제의 연간 성장률이 1%대에 그칠 만큼 경제 기초체력이 떨어진 탓일 것이다. 가계 부채와 고물가는 서민 지갑을 죄고, 소득·자산 양극화는 평범한 우리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의 삶을 더 팍팍하게 하는 모양새다.
당국자와 정치인이 증시 불장을 만끽하기보다 가려진 냉기(冷氣)와 리스크 요인 등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먼저 환율이다. 언뜻 환율은 잡은 듯 보인다. 작년 말 1480원대까지 치솟은 원·달러 환율은 당국의 필사적 개입 덕분에 1450원 안팎에 머물러 있다. 중요한 건 정부의 인위적 개입 효과가 지속할 수 있지 않다는 점이다. 되레 정책 신뢰만 훼손할 수 있다.
환율에 시선이 쏠린 사이 우린 금리의 역습에 노출돼 있다. 작년 연 2%대 중후반이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올 들어 연 3.5~3.7%까지 뛰었다. 중장기 성장률 둔화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 탓이다. 채권시장은 한국의 위험 프리미엄을 더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영끌’과 ‘빚투’에 나섰던 사람들은 언제 벼랑으로 내몰릴지 모른다.
체력은 바닥인데 돈은 넘쳐난다. 5년 전 3000조원 수준이던 M2(광의통화)는 작년 말 4500조원으로 불어났다. ‘과잉 유동성’은 기업 등 실물 경제에 스며들지 못하고 부동산 등 자산에만 몰렸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는커녕 인상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된 이유다.
'파티' 이후 준비할 때
‘저질 체력’을 극복하기 위한 체질 개선, 즉 산업 구조조정마저 지지부진해진 모습이다. 석유화학의 경우 대산단지의 구조조정 윤곽은 나왔지만 여수와 울산 단지의 사업구조 개편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분위기다. 철강산업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쑥대밭이 된 전국 각지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역시 여전히 늪에 빠져 있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해 구조조정 시계가 멈춘 것 아니냐는 의구심만 커진다.
얼마 전 한 관료에게 “시중의 과도한 유동성을 줄이고, 구조조정과 규제 개혁 등을 통해 경제 체력 확보에 신경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관료의 대답은 이랬다. “레코드판이 돌면서 흥겨운 음악이 흐르고, 국민이 즐겁게 춤을 추고 있다. 정부나 한국은행, 그 누가 나서 음악을 끌 수 있겠는가”. 지속되는 불장에 찬물을 끼얹을 순 없지 않냐는 얘기로 들렸다. 반은 맞는 얘기다. 다만 음악 볼륨이라도 줄여야 한다. 그리고 파티장 안팎에 다친 사람은 없는지, 깨진 그릇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파티가 끝난 후 다시 잔치를 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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