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이자 갚느라 씀씀이 줄이니 내수부진 심화
기업 자금난·경기침체 이중고에 투자 엄두 못내
정부 국가채무 급증에 재정 풀고 싶어도 못풀어
가계·기업·정부가 짊어진 막대한 부채가 대한민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3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11월 말 한국의 가계·기업·정부 부채의 합은 국내총생산(GDP)의 2배가 넘는 5800조원에 달한다. 연말에는 6000조원에 근접할 전망이다.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어난 기업부채는 고금리 상황과 맞물려 한계기업의 유동성 위기를 불렀다. 이자를 갚느라 씀씀이가 줄어든 가계는 고물가에 지갑을 닫으면서 내수 부진을 가속화했다. 경기 부양의 마중물 역할을 하던 정부는 부채 부담 때문에 섣불리 재정을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부채는 지난해 말 2734조원으로 GDP 대비 122.3%를 기록했다. 2019년 101.3%였던 GDP 대비 기업부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급증했다.
늘어난 부채는 2022년 이후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기업 자금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기 부진으로 매출이 감소한 중소기업은 이자 부담까지 겹쳐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다소 주춤하던 가계부채는 고금리 시기를 지나면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 3분기 말 가계신용은 1913조8000억원이다.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이어서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옮겨붙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높은 이자 부담으로 쓸 수 있는 돈이 줄어 내수에 악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소비 수준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 3분기까지 10개 분기 연속 줄어 역대 최장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상 가계가 돈을 맡기고 기업이 이를 빌려 투자해야 하는데 한국은 가계가 돈을 빌리고 있다"며 "쓸 돈이 줄어들면서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수 진작을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을 풀어야 하지만 국가부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지난 11월 말 기준 국가채무는 1190조4000억원이다. 국가채무가 이미 GDP 대비 50% 선을 넘은 데다 복지 분야 의무지출 급증이 예견돼 있어 섣불리 재정지출을 늘릴 수도 없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현재는 확장 재정이 필요한 시점인데도 정부가 주저하고 있는 것은 향후 악화될 수밖에 없는 재정건전성을 미리 잡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영욱 기자 / 이윤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