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제도가 시행 7년째를 맞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어디까지가 괴롭힘인지 모르겠다"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지난 2일 발표한 개정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을 발간하고 '직장 내 괴롭힘 판단 사례'를 대거 추가해 실제 현장에서 자주 논란이 되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사례에서는 같은 폭언·업무지시·인사조치도 목적과 경위, 반복성에 따라 결론이 엇갈리는 판결이 다수 등장했다.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 기준에 대한 기업과 근로자의 예측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 폭언은 무조건 괴롭힘?…'때와 장소'에 따라 달랐다
6일 고용노동부 개정 매뉴얼에 따르면 폭언이나 고성이 있다고 무조건 괴롭힘이 되지는 않았다. 상급자에게 출장보고를 하지 않고 대화 내용을 녹음까지 한 부하 직원에 대해, 상급자가 고성을 지르고 녹음파일을 지우라고 요구하며 질책한 것 자체는 근무수행 과정 및 내용에 관해 나무라고 개선을 지시하는 것으로 부서의 업무를 총괄하는 중간관리자인 과장의 지위에서 할 수 있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자신을 괴롭힘으로 신고한 팀원에게 "말꼬리 잡지 말고 하려던 거나 하라"며 날선 발언을 한 것도 누적된 갈등관계의 표출일 뿐,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모욕적 언동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도 눈길을 끈다. "니들 대학 나왔잖아. 이것도 못하냐"라거나 "너무 칼퇴근 아니냐"라며 '일회성'으로 지적한 행위는 괴롭힘이 아니라는 판단도 눈에 띈다. 다만 1회에 그쳤더라도 2시간 동안 업무태도를 지속적으로 지적하며 사직을 종용하거나, 청소 용역 직원에게 청소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고함을 지른 행위는 괴롭힘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중증외상환자를 다루는 응급의료센터에서 선임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에게 언성을 높인 사건도 있었다. 간호사 19명이 이 장면을 목격했다고 진술했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함께 나왔다. 법원은 이곳이 즉각적인 응급수술과 치료가 필요한 만큼 고도의 전문성과 신속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공간이라는 점, 선임 간호사가 후배를 가르치고 독려해야 하는 지위에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고성이 교육 목적을 벗어난 폭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같은 '언성을 높인 행위'라도 그 업무가 얼마나 긴급성·전문성을 요구하는지가 판단에 영향을 준 것이다.
회사 직원들이 외부에서 술을 마시고 사무실에 들어왔다가 언쟁이 붙어 거친 욕설과 고성이 오간 것도 법원은 평소 쌓여 있던 갈등이 우연한 계기로 한꺼번에 터진 것으로 보인다며, 지속적·반복적인 괴롭힘의 일환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욕설 자체는 부적절하지만, 그것이 '일방이 우위를 이용해 반복적으로 가한 행위'가 아니라면 법적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 상사는 같은 남성 부하 직원의 등이나 엉덩이를 때리고, 어깨를 흔들거나 툭 치는 행동을 반복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 있는 신체 접촉이었지만, 법원은 상사가 격려 차원에서 별다른 의식 없이 한 행동이라는 해명에 무게를 실었다. 법원은 "피해자에게는 고통이나 괴롭힘으로 느껴질 수 있다"면서도 그것만으로 불법행위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접촉이 얼마나 반복됐고 어떤 맥락에서 이뤄졌는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괴롭힘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 불편한 업무 지시와 질타...정당성 판단 달랐다
간호사 한 명이 탈의실을 이용하지 않아 출근 시간을 확인하기 어려워지자, 수간호사가 그를 불러 "앞으로 출퇴근할 때 인사를 하라"고 지시한 것은 괴롭힘이 아니라는 사례도 있었다. 법원은 이 지시가 결국 해당 병동에서 대부분 근무하는 직원의 출근 여부를 파악하려는 관리 목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적정한 관리 범위를 넘어선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감시성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지시의 배경에 합리적인 관리 목적이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취지다.
승진을 앞둔 직원이 인사고과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승진이 좌절된 두 사례는 대조적이다. 한 현장소장은 서무 업무를 맡은 직원에게 "이건 그냥 다른 부서 서포트일 뿐"이라는 식으로 깎아내리며 별다른 이유 없이 낮은 점수를 줬는데, 법원은 이를 괴롭힘으로 인정했다. 반면 영업소 실적 부진을 이유로 매니저와 소장 모두에게 낮은 등급을 준 사건은 "객관적 실적 부진에 따른 정당한 평가 권한 행사"로 봤다. 핵심은 낮은 점수 자체가 아니라, 그 점수를 준 '이유'가 합리적이었는지다.
업무 분장도 상황에 따라 결론이 달랐다. 육아휴직 복귀 후 보조업무로 밀려나고 책상까지 치워진 사례는 법상 명백한 괴롭힘이자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처벌까지 받았다. 하지만 매출 감소로 회사가 팀장의 업무를 바꾸고 일부 회의 내용을 공유하지 않은 사건에서는 경영상 사유가 명확하고, 배제 의도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괴롭힘이 아니라는 판단을 받았다.
연차휴가를 둘러싼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보 발령 직후 충격을 받은 간호사가 당일 아침 문자로 이틀치 연차를 쓰겠다고 통보하자, 병원 측은 사전에 신청서를 쓰지 않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무단결근을 이유로 시말서를 요구한 뒤 전보 조치까지 한 사례는 괴롭힘으로 인정됐다. 반면 연차휴가를 다녀온 직원에게 상급자가 사용확인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직원이 반발했고, 이 과정에서 "계속 그러면 어떻게 같이 일하겠느냐"는 말이 오간 사건에서 법원은 "확인서 제출 문제로 1회 언쟁을 벌인 정도만으로는 지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일회성이고 업무상 필요성이 분명하면 괴롭힘으로 보지 않는다. 카카오톡으로 "오늘 오프인가요"라며 출근 여부를 확인하거나, 근무시간 전에 업무 내용을 전달하며 압박한 행위, 총 1년3개월 동안 업무시간 외에 13차례 정도 카톡으로 업무지시를 한 경우는 괴롭힘이 아니라고 봤다.
○ 괴롭힘 신고 급증에 직장 혼란과 사회적 비용 치솟아…"기준 마련해야"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현장에서 급증하는 추세다. 2019년 도입 이후 2021년 7774건에 그친 신고 건수는 2025년 1만6373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6년간 6만3570건의 신고(처리 완료 6만2845건) 중 고용부 ‘개선 지도’는 5310건(8.3%), ‘검찰 송치’는 1164건에 그쳤다. 검찰 송치 사건 중 ‘기소’ 건수는 544건(0.8%)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문제가 있다’며 검찰송치, 과태료, 개선지도한 사건은 전체의 11.8% 정도다.
반면 ‘취하’는 1만3473건에 달했고 ‘법 위반 없음’ 1만9706건을 포함한 ‘기타’가 4만1896건이었다. 열 건 중 아홉 건은 조치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일각에선 낮은 기소율 등을 두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은 탓”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괴롭힘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급증하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라도 고용노동부가 단순 사례 소개를 넘어 △업무상 필요성 △반복성 △우월적 지위 행사 △공개성 △불이익 발생 여부 등 핵심 판단 요소별 가중치와 판단 원칙을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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