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석 같은 살결, 멈춘 시간…비비안 그레벤이 그린 변신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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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회화 작가 비비안 그레벤(41·Vivian Greven)의 국내 첫 개인전 <인 블룸(In Bloom)>이 2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위치한 페로탕 서울에서 막을 올렸다. 오는 8월 19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고전 신화와 조각, 그리고 현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소비되는 이상화된 미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존재와 변신의 경계를 탐구해 온 작가의 회화 세계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자리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인물과 꽃, 손의 형상이 서로 다른 상태와 맞닿는 찰나를 포착한 신작 11점을 선보인다.

비비안 그레벤의 신작, <운디네 I>(2026). 페로탕 서울 제공

비비안 그레벤의 신작, <운디네 I>(2026). 페로탕 서울 제공

이번 전시에서 가장 강렬하게 관객의 시선을 붙드는 핵심 작품은 물의 정령을 그린 '운디네 I (Undine I)'다. 천시 아이브스(Chauncey Ives)의 조각 '운디네(1880)'를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변신의 극적인 순간을 고요히 포착해냈다. 화면 속 운디네는 몸의 일부가 신비로운 푸른빛에 싸여 누워 있다. 캔버스 표면 위로 매끄럽게 흐르는 빛과 음영은 대리석처럼 차가운 질감을 전달하며 드레스 위에 맺힌 구체적인 물방울들을 통해 회화적 환영과 서사를 부여한다.

시간이 완전히 멈춘 듯한 느낌도 이 작가 작품의 특징이다. 그레벤이 그려낸 운디네의 순간은 낮인지 밤인지, 찰나인지 영원인지 알 수 없다. 물의 정령인 운디네는 생명의 시작이자 피할 수 없는 소멸과 순환을 머금은 긴장감을 유지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삶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겪는 외면적, 내면적 변신의 흐름을 깊이 있게 은유하고 있다.

비비안 그레벤의 신작, <애프터 다프네 II>(2026). 페로탕 서울 제공

비비안 그레벤의 신작, <애프터 다프네 II>(2026). 페로탕 서울 제공

이번 전시에 출품된 대부분의 작품은 신체의 일부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하거나 잘라내어 인물의 눈과 얼굴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다. 정체성이나 의미가 확정되지 않은 열린 상태, 즉 드러냄과 숨김 사이의 모호함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운디네 I'속 드러난 얼굴도 누워 뒤로 젖혀진 얼굴과 눈을 감은 듯한 묘사는 구체적인 표정을 읽어내기 어렵게 만드는데, 이 역시 미(美)에는 숨김과 불투명함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미학적 전략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아울러 그레벤의 세계에서 '손'과 '꽃'은 변신의 서사를 완성하는 양대 축이다. 작가에게 손은 변화를 지각하고 서로 다른 상태를 잇는 매개이자 접촉점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본드IV (Bond IV, 2026)'는 베르니니의 조각 '루도비카 알베르토니의 황홀경'과 에로틱 영화 이미지를 중첩하여 육체의 변형을 격자 프레임의 중첩을 통해 표현한다.

이는 오늘날 수많은 이미지를 쏟아내는 디지털 스크린을 의미한다. 꽃은 변화를 가시화하는 장치다. 신작 '애프터 다프네 II(After Daphne II, 2026)'등에서 펼쳐지는 꽃잎은 찬란한 생명의 시작과 피할 수 없는 쇠락을 상기시키는 양가성을 품은 채 마지막을 향한 시간을 우아하게 지연시킨다.

독일 회화 작가, 비비안 그레벤. 페로탕 서울 제공

독일 회화 작가, 비비안 그레벤. 페로탕 서울 제공

1985년생인 비비안 그레벤은 고대 그리스·로마 조각의 클래식한 형태에 매끄러운 디지털 매체의 미학을 주입하는 독창적인 회화 언어를 구축해 왔다. 그녀의 작품 속 매끄러운 신체 표면과 공간감이 사라진 평면적 배경은 현대 소셜 미디어나 사각의 액정 화면이 쏟아내는 환영-이미지들을 연상시킨다. 이번 전시는 기술 발전이 가져온 디지털 시대의 단절감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결합하고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하나의 소우주처럼 보여준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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