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에서 뱀이 나왔다”...컵라면 용기에 숨기고·요소수로 위장하는 밀수 천태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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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범들이 담뱃값에 은닉한 희귀뱀 <사진=관세청>

밀수범들이 담뱃값에 은닉한 희귀뱀 <사진=관세청>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마을에 화학공장이 들어서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해녀들. 이들은 바닷 속에 던진 물건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큰 돈을 벌수 있다는 말에 밀수의 세계를 알게 되고, 전국구 밀수왕을 만나게 되면서 이들의 밀수판은 확 커지게 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밀수’는 쫓고 쫓기는 밀수 현장의 이야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51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지난해 한국 영화 흥행작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기상천외한 밀수 수법은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올해 들어서도 세관의 눈을 교묘히 가리는 밀수 사례들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진화하는 밀수 수법에 세관 당국도 첨단 장비 도입 등을 예고하며 관리 수위를 높여가는 중이다.

◆요소수인 줄 알았더니 서리태였네

다른 물건과 함께 밀수품을 들여오는 ‘심지박기’는 대표적인 밀수 수법이다. 밀수범들은 고세율 관세품목을 다른 품목으로 위장해 수입하면 경제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을 노린다.

올해 관세청 인천본부세관에 적발한 서리태 밀수는 심지박기 수법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밀수범들은 서리태가 항암효과와 노화·탈모 방지 등에 탁월한 ‘슈퍼푸드’로 각광받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특히 이들이 주목한 것은 487%의 관세. 밀수에 성공하기만 하면 정식으로 수입 유통되는 제품을 대신해 막대한 차익을 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요소수 적재박스에 은닉된 서리태 <사진=관세청>

요소수 적재박스에 은닉된 서리태 <사진=관세청>

2021년 벌어진 요소수 대란에서 밀수범들은 교훈을 얻었다. 지난해에도 요소수 공급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요소수나 요소로 수입 신고를 하면 세관의 검사를 피할 것이라 생각했다. 세관의 검사 대상으로 지정될 경우를 대비해 파렛트(Pallet) 하단에는 서리태를 적재하고, 상단에는 요소수를 적재했다. 밀수범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 19차례에 걸쳐 중국산 서리태를 국내로 들여왔다.

인천본부세관은 CCTV 분석과 화물운송 기사 등을 통해 밀수품의 최종 도착지와 구매자를 특정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현지 공급책은 물론 국내 유통책까지 일망타진했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는 국내산 농산물을 취급하는 영농조합법인 운영자 B씨 부부가 중국산 서리태 56톤(시가 3억 원 상당)을 밀수책으로부터 구입한 후 국내산으로 원산지를 둔갑하여 시중에 유통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들 일당 13명은 관세법 위반 혐의로 검찰 송치된 상태다.

◆담배값 열었더니 희귀뱀이

최근에는 외래 생물에 대한 밀수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코모도섬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코모도왕도마뱀은 밀수를 통해 지난해 국내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 도마뱀은 전세계 개체수 5000마리 이하로 추정되며, 국내에 수입된 적이 없고, 밀수건 적발도 올해 최초로 이뤄졌다.

밀수를 통해 국내에 첫발을 내딛은 코모도왕도마뱀 <사진=관세청>

밀수를 통해 국내에 첫발을 내딛은 코모도왕도마뱀 <사진=관세청>

인천공항세관은 외래생물 밀수 전과자들과 우범여행자들에 대한 동태를 관찰하던 중 수상한 낌새를 눈치쟀다. 지난 5월 30일 태국에서 입국하는 밀수 운반책을 검거하고 관련 공범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했다. 압수수색과 포렌식 분석, 계좌추적 등 추가적인 수사도 뒤따랐다.

밀수해 보관 중이던 곳을 세관 직원이 급습하자 지금까지는 경험해 보지 못한 장면들이 연출됐다. 수 천만원에서 수 억원을 호가하는 코모도왕도마뱀과 에메랄드트리보아 등 희귀 외래생물이 대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관세청이 압수한 외래생물만 1865마리, 시가 19억원 상당에 달했다.

수사 결과 이들 밀수 일당은 2022년 7월부터 2024년 5월까지 2년간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을 오갔다. 밀수 주범은 세관 검사를 피하고자 공짜 해외여행을 미끼로 주변 지인들도 포섭했다. 외래생물 운반책은 속옷 하의와 컵라면 용기, 담뱃값 등에 외래 생물을 은닉해 수 십회에 걸쳐 밀수입했다.

주범들은 정상적인 거래가 불가능한 국제적 멸종위기 동물을 네이버 카페 등 온라인상에서 판매하거나 전문 파충류 가게에 판매하면서 막대한 경제적 이득도 취했다. 이들은 멸종위기 1급(CITES1급) 버마별거북을 태국에서 30만원에 사들인 뒤 국내에서 400만원에 되팔았다.

◆올해 9월까지 1900만명 투약 마약 적발

마약 밀수 역시 늘어나는 추세다. 관세청 정보분석팀이 세관을 통과하는 국제우편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우편물과 다를 바 없었다. 편지 봉투를 뜯자 빛바랜 얇은 종이 몇 장이 전부였다. 알고 보니 마약을 압축시켜 종이처럼 얇게 만든 뒤 편지봉투에 넣은 것이었다. 마치 국제우편물인 것처럼 밀반입을 시도한 사례다.

관세청은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국경단계에서 총 623건, 약 1900만명이 동시 투약 가능한 574kg의 마약을 적발했다. 이는 일평균 2건, 2.1kg에 가까운 마약밀수를 차단한 것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적발 ‘건수’는 24%, ‘중량’은 16% 증가했다.

중량에 비해 적발 건수가 더 늘어난 것은 10g 이하 소량 마약 반입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여행객들이 옷 속에 숨겨 들어오거나 국제우편으로 반입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올 들어 9월까지 10g 이하 소량 마약 밀수 적발 건수는 118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79건에 비해 49.4% 늘었다. 소형 마약 적발 중량도 같은 기간 63g에서 272g으로 4.3배 늘었다.

연도별 3분기 마약적발 건수 및 중량 <자료=관세청>

연도별 3분기 마약적발 건수 및 중량 <자료=관세청>

세관 현장의 빈틈을 노리는 소형 마약 밀수에 더해 국제 유통 조직이 끼어든 대량 밀수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올해 1~9월 적발된 국제 마약 조직이 유통을 목적으로 시도하는 10㎏ 이상 대량 밀수는 15건, 272㎏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건수는 3배, 중량은 4.3배 증가했다.

적발된 마약의 주요 출발국은 중량 기준으로 태국(233㎏), 미국(110㎏), 멕시코(29㎏), 말레이시아(26㎏), 캐나다(25㎏), 네덜란드(22㎏) 순이다. 특히 네덜란드는 작년 대비 적발 중량이 168% 증가했는데, 이는 네덜란드발 엑스터시(MDMA)와 케타민 밀수가 증가한 탓이다. 작년에 4.5㎏이었던 네덜란드발 엑스터시·케타민 적발은 올해 19.2㎏으로 4.2배 늘었다. 이 약물은 ‘클럽용 마약’으로 불리며 2030세대를 중심으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밀수 꼼짝마’ 내년부터 첨단 장비 속속 도입

술래잡기 상대방인 밀수법들의 날로 진화해 가는 밀수 수법에 가만히 있을 세관 당국이 아니다. 공항 입국장을 서성거리던 A씨는 세관 직원에게 덜미가 잡혔다. 행색은 해외 여행객이었지만 수상한 행동을 눈여겨 보던 인공지능(AI)이 밀수범 A씨를 포착했다. 통관 단계에서 여행자를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는 A씨의 생체신호와 표정변화까지 읽어내 범법 행위 단속을 도왔다.

A씨 같은 우범 여행자를 자동으로 식별하는 공·항만 통관 절차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준비를 마쳤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관세청은 세관 현장에 적용할 첨단기술에 대한 실증 작업을 연내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현장 적용을 검토 중이다.

마약 등 밀도가 낮은 물질을 정확히 선별하는 소형화물 검색용 복합 엑스레이(X-ray) 장비가 대표적이다. 기존 투과형 엑스레이 방식에 산란 방식을 결합해 판독 능력을 끌어올렸다. 의료 분야와 비파괴 검사 등에 사용되는 산란 방식은 전자기파로 물체 내부를 보는 기존 투과형 방식보다 판독 성능이 우수하다.

사진설명

인공지능(AI)도 세관 현장의 고충을 덜어줄 전망이다. AI 기반 우범 여행자 식별·추적 시스템도 본격적인 가동 채비에 들어갔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AI를 활용해 자동으로 우범 인물을 가려낼 수 있다. 군중이 밀집하는 공항과 기차역 등에서도 수상한 인물과 사물에 대한 손쉬운 추적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은 세관 직원이 공항 등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통해 우범 여행자의 동선을 사람이 직접 감시해 왔다.

카메라 영상으로 여행자의 생체 신호와 표정 변화 등 이상징후를 탐지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이 기술은 통관 단계에서 여행자의 심리불안 상태를 측정하고, 위험인물을 사전에 선별할 수 있는 과학적 판단기준을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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