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은 지극히 평범한 도구다. 매일 머리를 빗으면서도 평소 쓰는 빗이 어떻게 생겼는지 딱히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 평범한 생활용품이 10만원 전후 가격대에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프랑스 뷰티 브랜드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Officine Universelle Buly·불리)가 내놓은 ‘빗’이다. 국내에선 LF가 수입·판매한다. 요즘 젊은층은 이 불리의 빗을 단순한 기능적 도구가 아닌 소장하고 싶은 오브제로 인식한다.
도대체 이 빗은 어떤 점이 특별하기에 명품 오브제 대우를 받을까. 최근 서울 강남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 청담 부띠크에서 프랑스 불리 본사의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인 플로리안 엘리 바즈를 만나 빗의 미학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바즈 디렉터는 머리를 빗는 행위를 타인 앞에 나서기 전 스스로를 정돈하는 하나의 의식 행위로 해석했다. 일상의 물건을 들여다 보며 의미를 찾아보면 때론 놀랍도록 가치있는 대상이 되곤 한다. 버즈 디렉터는 “생각해보면 빗은 매우 겸손한 물건”이라고 했다. 그는 “빗질은 우리가 매일 하는 반복적인 행위지만, 그 이면엔 많은 마법이 숨어 있다”며 “거울 앞에서 자신을 돌보고 준비하는 시간은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의 일부”라고 짚었다.
불리가 빗에 주목한 이유는 이 사소한 행위가 브랜드가 말하는 ‘케어’의 본질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불리는 향수, 보디 오일, 비누, 치약 등 다양한 일상용 제품을 다루지만, 제품 그 자체보다 내세워 강조하는 게 제품을 사용하는 행위다. 매장 안에서 제품을 고르고, 직원과 대화하고, 포장과 각인 서비스를 거쳐 제품을 전달받는 과정까지를 하나의 의식으로 본다. 바즈 디렉터는 “빗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부티크에서 고객에게 전달되는 순간까지 모두 세리머니의 일부”라고 "불리는 빗을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도구인 동시에, 거울 앞에서 자신을 정돈하는 시간을 파는 제품이라 본다"고 강조했다.
불리의 빗은 14번의 공정을 거쳐 제작된다. 유럽에서 몇개 남지 않은 제조업체 중 한 곳인 스위스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원재료를 손으로 자르고 디자인에 맞춰 형태를 조정한 뒤, 모서리를 둥글리고 빗살을 다듬기 위해 폴리싱 처리를 거친다. 빗살과 홈은 머리카락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설계됐다.
색감과 소재엔 불리 만의 미학이 반영됐다. 거북 등껍질 무늬를 연상시키는 무늬에 오래된 안경에서 볼 수 있는 고전적인 색감의 아세테이트를 주재료로 썼다. 지나치게 선명하거나 유행이 강하게 반영된 색상보다는 오랫동안 질리지 않는 색을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바즈 디렉터는 “트렌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불리의 빗은 계속 머무르기에 우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빗을 미적인 오브제로만 다룬 것은 아니다. 빗은 본래 기능이 뚜렷한 물건인 만큼 실용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바즈 디렉터는 “빗은 아름다워야 하지만 아름답다는 이유로 실용성을 희생할 수는 없다”며 “빗의 첫 번째 기능은 머리를 빗고 엉킨 부분을 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컬렉션을 철저히 용도에 따라 세분화한 이유다. 눈썹용, 콧수염용, 여행용, 염색용 등 컬렉션 내 130여개의 빗들은 용도가 다 다르다. 바즈 디렉터는 “1803년 브랜드를 창립한 람단 투아미와 빅투아르 드 타이약 부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용도를 아우르는 빗 컬렉션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라고 전했다.일부 빗은 촘촘한 이와 넓은 이를 함께 배치해 하나의 제품에 두 가지 기능을 담기도 했다. 어린이를 위한 브러시는 건강을 위해 염색하지 않은 나무를 쓴다.
바즈 디렉터는 한국 시장의 럭셔리 소비 형태가 경험을 중시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불리의 장인정신이 더욱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국내 불리의 빗 매출(지난 1~4월 기준)은 전년 동기 대비 약 3.7배 늘었다. 바즈 디렉터는 “그간 럭셔리라는 개념이 다소 남용돼 왔다”며 “비싸게 지불한다는 사실 만으로 희소성이나 품질이 증명되던 시대는 지났다”라고 했다. 명품 산업의 성장이 둔화하고 있다는 지적에 “고객들은 물건을 구매한 뒤에 기억할 만한 무언가가 없다면 비싼 물건을 사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소유’ 그 자체가 아니라 소유에 따른 ‘감정’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게 불리와 바즈 디렉터의 철학이다. 그는 “완벽하게 관리된 부티크, 잘 훈련된 판매 직원, 브랜드가 내세우는 수준에 맞는 매장 서비스, 디자인과 설계 단계부터 세심하게 만든 오브제가 있다면 마케팅 조차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매장에 들어서고, 직원과 대화하고, 제품을 고르고, 이름이 적힌 포장을 받아드는 과정 전체가 소비자의 기억에 남는다는 것.
바즈 디렉터는 “모두가 물건을 산다. 중요한 건 ‘그 구매를 어떻게 기억하는가’다”라며 “좋은 제품이 있는 매장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다면 고객은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고 말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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