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설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안데르스 올손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노벨위원회 노벨문학상 의장·75)은 3일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에서 “한강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것은 윤리적 차원과 인간의 고통에 대한 강한 감각”이라고 강조했다.
올손 위원장은 오는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개최되는 한강 작가의 2024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심사위원회 전원을 대표해 스웨덴의 칼 구스타브 16세 국왕과 세계문학 독자들에게 ‘2024년 노벨문학상 한강 선정 사유’를 연설하는 인물이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손 위원장을 향한 서면 인터뷰 질의서는 11월 30일 발송됐으며, 답변은 나흘 뒤인 12월 3일 새벽(한국시간)에 도착했다. 그는 7개의 질의로 진행한 문답에 앞서 “내 견해는 올해 노벨문학상 심사위원 중 한 명의 의견일 뿐”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그러나 내 개인적 견해를 기꺼이 (한국 독자들과) 공유하겠다”며 입을 열었다.
대표작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는 증언문학
하나의 장르에 머물지 않고
‘흰’ 등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
올손 위원장은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장에 명시된 대로 노벨문학상은 세계적인 상으로 운영됐지만 본질적으론 유럽 중심의 상으로 비쳤다. 지난 몇십 년간 수상의 범위(수상 작가 국적)를 넓힐 수 있었고 그렇기에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특히 올손 위원장은 보수적인 한국인들이 한강 작가에 대해 제기한 ‘역사 왜곡’ 비판과 관련해 한국인으로부터 항의 메일을 받아 이미 알고 있으며, ‘채식주의자’ 영문판의 오역 논란 때문에 4개 버전의 언어로 ‘채식주의자’를 읽었다고도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강 최근작은 ‘증언문학’의 결과물로 이해된다. 그런 점에서 한강 소설은 헤르타 뮐러, 케르테스 임레, 가오싱젠, 오에 겐자부로 등 인간의 악마성이 드러난 전쟁과 독재에 항거한 문학적 유산을 공유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심사위원장으로서 한강 소설의 문학적 성취를 평가해달라.
▷한강의 대표적인 소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으로서의 증언문학과 유사성이 크다. 증언문학이란 개인, 집단이 경험한 고통, 트라우마에 대한 증언을 기록하는 문학의 형태를 뜻한다. 하지만 난 위대한 작가의 작품을 특정 장르로만 ‘축소’해 바라보는 일에 회의적이다. 한강의 다른 작품인 ‘채식주의자’ ‘흰’ ‘희랍어 시간’도 증언문학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증언문학에 머무르기보다는) 난 한강 작가가 매우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느낀다. 그 이유는, 증언문학의 전통에 속한 여러 작가와 다르게 한강 작가가 매우 시적(詩的)이고 주관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 소설엔 윤리적 차원과 인간의 고통에 대한 강렬한 감각이 반복된다.
영문판 오역 논란 영향으로
‘채식주의자’ 4개 언어로 읽어
한국어 직역한 독일어판 우수
보수적 한국인, 역사왜곡 비판
중요한 건 현실 표현하는 능력
-증언문학으로서의 한강 소설을 질문한 이유는, 증언문학의 기본적 조건인 ‘사실성(factuality)’에 관한 논쟁이 현재 한국에서 발생해서다. 증언문학은 언제나 역사에서 잉태된 사실성에 기반하므로 반대 진영에서는 ‘역사 왜곡’ 비판이 제기되곤 한다. 한국의 일부 독자들은 한강 소설의 이념적 편향성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으로서 나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발표 후 보수적인 한국인으로부터 한강 작가를 ‘이데올로기적 작가(an ideological writer)’로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내게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다(To me this is all together false). 한강 작가가 특정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을 수도 있겠고, 물론 그에 대해 난 확신할 수 없지만, 문학에서 중요한 건 특정 문제에 대한 의견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설득력 있게 현실을 표현해내는 능력이다.
-한강 소설은 ‘타인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전 소설이 아닌 이상 소설을 쓰는 작가는 관찰자 자리에 서게 된다. 고통을 당사자가 아닌 작가가 경험하고 서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관찰자로서의 시선이 담긴 문학은 독자에게 의미를 형성할까.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와 같은 위대한 작품(a great work)에서 일어나는 일은 고통이 재현되고 (소설 속 두 친구 간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그 고통이 새로운 현실이 된다는 점이다. 그 소설을 읽으면 과거는 더 이상 과거로만 남지 않는다. 이 점에서 난 증언문학의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비록 허구적 요소가 강하지만 말이다.
-주로 한강 작가의 소설은 개인과 시대의 고통에 대한 질문으로 평가받는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으로서 한강 작가의 어떤 작품을 얼마나 깊게 읽었는지, 또 어떤 작품을 눈여겨봤는지 궁금하다.
▷스웨덴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읽을 수 있는 모든 언어’로 번역된 한강의 작품을 읽었다. 불행히도 한국어를 알지 못한다. 한국어로 한강 소설을 읽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다. 참고로, 나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이 부족하다는 점(deficiencies)을 심사 초기에 보고받았다. 스웨덴어 번역도 영문판 번역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중역). 따라서 우리 심사위원들은 ‘채식주의자’를 세 가지 언어 버전(스웨덴어, 독일어, 프랑스어)으로 읽어야 했다. 한국어를 직접 독일어로 번역한 독일어 번역본(직역)이 다른 언어 번역본보다 우수하다고 판단했다.
-한국 작가가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독자들 역시 거대한 감동을 받았다. 난 역으로 질문해보고 싶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스웨덴 한림원엔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노벨문학상은 작가 개인에게 수여되지, 국가에 주는 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상의 범위(수상 작가의 국적)를 넓힐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노벨문학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에 명시된 대로 세계적인 상으로 의도되었지만 198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가 상을 받기 전까지 본질적으로는 ‘유럽 중심’의 상으로 비쳤다. 우리는 새로운 정책(지역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노벨문학상 심사에 깊이 참여한 당사자로서 ‘21세기 문학’을 정의해달라. 윤리적 관점에서 소설 장르가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한다고 보는지, 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장 이상적인 문학’이란 어떤 형상이어야 한다고 믿는지도 궁금하다(두 개의 질문을 아래 하나의 질문으로 통합해 답변함).
▷향후 몇 년간의 급진적 변화에 대해 우리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정한 윤리적 동기를 가진 글쓰기만을 주장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1901년에 시작된 노벨문학상의 첫 100년간 스웨덴 한림원은 도덕적이며 보수적인 가치관 때문에 레프 톨스토이, 헨리크 입센,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와 같은 작가들을 ‘부도덕하거나 이상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20세기 동안 스웨덴 한림원이 이전과는 달리 ‘문학적 가치’를 중심으로 상을 수여한 건 올바른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강 작가의 작품에 담긴 윤리적 차원을 평가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러나 한강 작가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주된 이유는 분명하게도 ‘문학적 가치’ 때문이다.
스톡홀름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