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현대자동차가 맞닥뜨린 미국 시장은 유독 추웠다. 1988년 26만 대에 달한 연간 판매량이 10년 만에 9만 대로 떨어지면서다. 당시만 해도 ‘현대차는 싸구려’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잦은 고장으로 고객 원성이 극에 달해 철수설까지 돌 정도였다.
‘10년·10만 마일 무상 보증 수리’.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미국 시장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던진 반전 카드였다. 글로벌 1위 일본 도요타가 5년·6만 마일을 보장하던 때다. 경쟁사들은 “보증 비용에 짓눌려 파산할 것”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이 승부수는 현대차를 ‘불신’에서 ‘신뢰’의 상징으로 탈바꿈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정 명예회장 생애·경영철학 집대성
20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정 명예회장의 생애와 경영 철학을 집대성한 첫 회고록을 발간한다. 1998년 기아 인수부터 2005년 미국 앨라배마 공장 준공까지 ‘품질경영’으로 요약되는 그룹의 글로벌 도약사가 생생하게 담길 전망이다. 위기 때마다 빛을 본 정 명예회장의 ‘위기 극복 DNA’를 계승해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내년은 현대차그룹 창립 60주년을 맞는 해다. 현대차그룹은 이에 맞춰 정 명예회장의 첫 회고록 편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 명예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회고록을 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무 총괄은 언론인 출신인 이장규 현대차·기아 사사 편찬태스크포스(TF) 고문이 맡았다. 실무팀은 정 명예회장의 측근과 전·현직 임원을 심층 인터뷰하며 정 명예회장의 생애를 정밀하게 복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회고록은 내년 12월 창립기념일을 전후해 발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고록에는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 시절의 비사(秘史)부터 담길 전망이다. 정 명예회장은 32세이던 1970년 현대차 서울사업소 부품과 과장으로 입사한 뒤 1977년 현대정공 초대 사장을 맡았다. 1991년 출시 1년 만에 점유율 50%를 넘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갤로퍼의 성공 스토리는 부친인 정주영 창업 회장에게 경영 능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외환위기를 정면 돌파한 ‘품질 경영’ 일화도 비중 있게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할 당시 시장에선 “부실 덩어리를 떠안았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구원투수로 나선 정 명예회장은 “품질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며 한 달에 한 번씩 서울 여의도 기아 사옥(현 현대캐피탈 사옥) 지하에서 신차 점검 회의를 주재했다. 카니발 개발 당시 3시간 넘게 차량을 살피며 와이퍼 소음 불량까지 잡아낸 일화가 유명하다. 이 같은 집요한 품질 관리로 기아는 인수 이듬해인 1999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005년 앨라배마 첫 현지 공장 준공 등 그룹의 명운을 가른 결정적 순간도 집중 조명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소비자가 차를 구매한 지 1년 이내에 실직하면 차를 무상으로 반납할 수 있도록 하는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을 운영한 ‘역발상 경영’ 일화도 소개할 예정이다.
◇회고록 이어 사사 편찬도
현대차그룹은 회고록과 함께 현대차 창립 60주년 사사(社史)도 준비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이 몸담았던 현대모비스도 내년 50주년을 맞아 사사 TF를 꾸렸다. 기아는 지난해 12월 창립 80주년 사사를 발간했다. 현대차그룹이 그룹 사사와 회고록 편찬에 나선 것은 선대 회장의 리더십을 조직 전반에 각인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등 미래차 패권 전쟁에서 “일단 해보자”는 특유의 돌파력을 앞세우겠다는 전략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달 25일 열린 ‘정주영 창업 회장 작고 25주기 추모 음악회’에서 “창업 회장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미래를 개척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사와 회고록 발간은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정신적 재무장 작업”이라고 분석했다.
양길성/김우섭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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