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반포에 밀렸대”…70층 품는 압구정의 반격, 한강변 왕좌 되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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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패스트트랙 적용해
2구역 가장 먼저 심의 통과
총 1만가구 6개 정비구역
전체 사업속도에도 탄력

정부 대출 규제 영향에도
가격 큰 폭 오름세 보여
초고층 건축 공사비 커져
분담금 증가·공기지연 우려도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 압구정동이 두번째 천지개벽을 앞두고 있다. 1970년대 초반만해도 모래밭, 과수원, 채소밭이었던 압구정동은 1970년대 중·후반~1980년대 건설 붐과 민영아파트 대중화 바람을 타고 강남을 상징하는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했다.

당시로서는 드문 고층(최대 15층)에 대단지, 파격적인 평면 구조와 조경 설계로 ‘K아파트’의 새 지평을 열었다. 단순 주거지를 넘어 강남 개발과 한국 도시화의 상징으로 강남 부촌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압구정2구역 조감도 <서울시>

압구정2구역 조감도 <서울시>

25일 압구정2구역 정비계획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것은 한국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 일대 재건축이 본격적인 신호탄을 쐈다는 의미가 있다. 압구정 아파트지구 구축 단지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하이엔드·랜드마크를 키워드로 60~70층에 달하는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특징도 있다.

현재 압구정동 일대에선 현대, 미성, 한양 등의 아파트 1만여 가구가 6개 구역으로 나뉘어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중 2~5구역은 신속통합기획을 확정했다. ‘오세훈표 정비사업 모델’ 불리는 신통기획은 서울시와 주민이 함께 정비계획안 초안을 만들어 사업 속도를 높이는 제도다. 정비구역 지정까지 통상 5년 정도 걸리던 것을 최대 2년까지 단축할 수 있다.

‘첫주자’로 나선 압구정 2구역은 가장 진행속도가 빠르다. 압구정 2구역은 지난해 7월 신속통합기획이 수립된 이후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 신속통합기획 자문을 거쳐 16개월 만에 정비계획까지 확정됐다. 시는 정비계획을 고시한 뒤 통합심의(건축, 교통, 교육, 환경 등)를 거쳐 건축계획을 확정하고 사업을 신속히 추진할 방침이다.

1982년 준공돼 올해로 42년째를 맞은 압구정2구역은 이번 심의를 통해 최고 250m 높이의 12개 동, 2606가구로 재건축된다. 용적률은 300% 이하로 결정됐다.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최고 층수는 확정되지 않았다. 최고 높이 내에서 조합이 자유롭게 층수를 계획하면, 향후 건축심의 등에서 구체적인 층수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확정된 최고 높이 250m는 조합이 제안한 높이(264m)보다는 낮지만 63빌딩(249m) 수준으로 마천루 아파트의 조건을 갖췄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한 층 높이가 3~3.3m임을 감안하면 조합이 계획한 70층 재건축도 가능한 높이다. 압구정 아파트지구내 단지들이 모두 초고층을 바라보고 있는 만큼 압구정2구역 조합은 최고 높이 65~70층 아파트를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모든 동을 250m 높이로 짓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전체적으로 텐트 모양의 스카이라인을 계획했다. 유연한 높이를 적용해 강남·북을 잇는 동호대교의 남단 논현로 주변은 20∼39층으로 낮게 계획했다. 서울시는 공동시설을 외부에 개방하는 ‘열린 단지’로 재건축하기로 하면서 70층을 허용했다. 너비 8m의 공공 보행통로를 계획해 압구정동을 찾는 누구나 이 길을 가로질러 한강공원에 갈 수 있게 하고, 담장도 설치하지 않는다. 경로당, 어린이집, 작은 도서관, 돌봄센터, 수영장, 다목적체육관도 개방하기로 했다. 압구정2구역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이번 서울시 심의 통과를 시작으로 재건축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면서 “압구정 나아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단지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설명

압구정2구역 심의 통과를 계기로 압구정동 일대 재건축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압구정 3~5구역의 경우 정비계획안에 대한 주민공람을 거쳤거나 현재 진행 중인 단계에 있다. 나머지 압구정 3개 구역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다.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 심의가 이뤄지는 절차다. 이번 2구역 심의 결과가 향후 3·4·5구역 재건축 심의의 지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압구정 구현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3구역의 경우 최고 70층, 5175가구로 재건축을 추진중이다. 지난 6월과 9월 주민공람을 진행한 압구정2·4·5구역에 이어 마지막으로 주민공람을 진행중이다. 조합이 제출한 계획안에 따르면 압구정3구역은 최고 70층(291m), 5175가구(공공임대 650가구)로 재건축을 추진한다. 사업 진행이 가장 더딘 압구정1구역(미성 1·2차 아파트)은 통합 재건축을 논의할 조짐이다. 두 단지는 지구단위계획으로 묶여 있어 분리 재건축은 쉽지 않아 주민 간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제히 초고층을 선택한 압구정 재건축 조합들은 차별화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 60층 이상 초고층 재건축에 따라붙는 공사비 증가, 공사기간 연장, 분담금 증가 등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례로 최고 69층 재건축을 추진했던 ‘잠실 장미 1·2·3차 아파트’의 경우 최고 49층으로 계획을 바꿨다. 주민들이 초고층 랜드마크가 아닌 신속한 사업 진행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됐다.

압구정동 한 공인중개사는 “한 단지만 초고층으로 올라가면 나머지 단지는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평가될 수 있기 때문에, 다같이 초고층을 추진하는 것”이라면서 “평당 2억에 육박하는 초고가 단지의 경우 높이 올릴수록 아파트 가격이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압구정 일대 아파트 가격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압구정은 이미 우리나라 최고 부촌으로 평가받지만 재건축 사업이 다소 지연된 사이 신축 아파트로 탈바꿈한 반포 일대가 근래 가격 상승을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압구정 재건축 단지들이 정비사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며 가격이 큰 폭으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재건축이 완성될 경우 반포 신축 아파트와도 연식이 10년 이상 차이가 나며 무게 중심이 다시 압구정으로 옮겨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압구정 2구역에 대한 주목도가 높다. 지난달 이 아파트 전용 183㎡는 81억5000만원에 신고가로 매매 계약이 체결됐다. 동일 면적의 올해 초 매매 거래(67억5000만원)과 비교해 14억원이 오른 것이다. 특히 9월부터 대출 규제가 본격 시행되며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가 한풀 꺾이고 있지만 압구정 일대는 영향을 덜 받는 모양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압구정 재건축 아파트는 미래 가치가 확실하고, 전국구 단지로 입지 강점을 지니고 있는 만큼 현금을 다량으로 보유한 부유층이 대출 규제에 관계없이 매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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