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기후기술을 고르는가 [정석희의 기후 에너지 인사이트]

5 days ago 19

기후위기 대응에서 부족한 것은 흔히 의지와 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더 자주 발목을 잡는 것은 필요한 기술이 아직 없다는 사실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25년 보고서에서 세계가 탄소중립에 이르는 데 필요한 감축량의 약 35%가 아직 상업적 규모에서 실증되지 않은 기술에 달려 있다고 분석한다. 지금 손에 쥔 기술만으로는 목적지에 닿지 못한다는 뜻이다. 출처=AI로 생성한 이미지 그렇다면 그 기술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대부분은 아직 누군가의 연구계획서 안에 문장으로만 존재한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익숙한 이름도 없이. 국가가 그 가운데 무엇을 살릴지 정하는 절차를 우리는 심사라고 부른다. 심사는 미래에 쓸 기술을 오늘 고르는 일이다.이 과정은 본질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을 알아보는 일이다. 2004년, 나는 과학기술부의 ‘해외 석·박사학위 취득 지원’ 사업에 지원했다. 계획서에 적은 나의 생각은 명확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가 머지않아 거대한 문제가 될 것이고, 많은 전기를 써서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하·폐수처리장도 에너지를 생산하는 시설로 변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생물 연료전지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것에 대해 썼고, 그 제안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아 미국으로 떠났다.그때 국가가 투자한 것은 존재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무엇이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한 사람의 생각이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경험한, 국가가 기술의 미래를 알아본 첫 장면이었다.그러나 연구자로 살아오면서 쓰디쓴 장면들도 보게 되었다. 유학 시절, 연구에는 국경이 없었지만 사람들의 관계에는 한국에서 하던 편 가르기가 따라 들어왔다. 귀국한 뒤에는 면접에서 발표했던 연구 아이디어가 다른 이의 연구기획 안에서 다시 등장하는 일도 겪었다.교수 부임 후, 한국연구재단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더 근본적인 것을 보았다. 연구내용에 가장 적합한 전문가를 찾는 일과는 별개로, 신청자와 가까운 사람을 평가자로 이어줄 수 있는 여지가 추천과 배정 과정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그것은 학연일 수도 있고 지연일 수도 있으며, 공동연구나 학회에서 자라난 관계일 수도 있다. 이름이 무엇이든, 공적인 연구비의 배분에 사적인 관계망이 개입할 수 있다면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허용하는 구조에 있다.이름을 가리면 무엇이 보이는가국내 연구비 심사를 분석한 한 연구는 신청자를 알고 평가했을 때 출신 대학의 위상, 연구경력, 이미 쌓인 학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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