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음악-미디어아트 조화… 김광균의 시 속에 젖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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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예술 ‘추일서정’ 서울 첫 공연
배우 김미숙-소프라노 이명주등 참여
이제훈 내레이션으로 더 풍성해져

 김광균’. 왼쪽부터 피아니스트 조재혁, 배우 김미숙, 첼리스트 송영훈. 하슬라국제예술제 제공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인 김광균의 작품을 음악과 영상, 미디어아트 등 공감각적으로 되살려 낸 ‘하슬라 인 서울―추일서정: 김광균’. 왼쪽부터 피아니스트 조재혁, 배우 김미숙, 첼리스트 송영훈. 하슬라국제예술제 제공
“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

귀를 때리는 듯한 빗소리 위로 배우 이제훈의 낮은 내레이션이 스며들었다. 김광균의 시 ‘노신(魯迅)’이 낭송되자 어두운 무대엔 하얀 타이포그래피가 솟아올랐다. 이중 프로젝션으로 입체화된 글자들은 구름처럼 부유하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인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1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열린 ‘하슬라 인 서울―추일서정: 김광균’은 한국 모더니즘 시를 대표하는 김광균(1914∼1993)의 작품 세계를 음악과 낭송, 미디어아트로 풀어낸 종합예술 공연이다. 지난해 강원 강릉시에서 열린 ‘하슬라국제예술제’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서울에서 선보이는 건 처음이다. 하슬라(何瑟羅)는 삼국시대 강릉의 옛 이름이다.

강릉 공연과 달리 이제훈의 녹음 내레이션이 더해진 서울 공연은 김광균의 대표 시 9편을 중심으로 16개 장면으로 재구성됐다. 눈과 비, 바람, 바다, 안개, 기적 등 시 속에서 반복되는 감각적 이미지들이 음악과 영상으로 다채롭게 표현됐다. 배우 김미숙의 낭송을 중심으로 소프라노 이명주,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 첼리스트 송영훈,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참여했다.

각 장면은 시와 음악이 맞물리며 선명한 이미지로 살아난다. 소복이 쌓이는 눈과 외로이 켜진 호롱불의 대비가 돋보이는 ‘설야(雪夜)’에 드뷔시 ‘눈 위의 발자국’이 흘러나왔다. 서재처럼 꾸며진 무대 한가운데 김 배우가 직접 앉아 낭송하자, 눈 내리는 밤의 고요와 쓸쓸함이 손에 닿을 듯 깊이 다가왔다.

특히 음악은 단순한 반주를 넘어 공연 전체를 이끄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명주는 최우정 작곡가가 이번 공연을 위해 작곡한 가곡 ‘목련’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아련하게 그려냈다. 또 다른 초연 가곡 ‘와사등’ 역시 왈츠 리듬으로 도심 속 외로움을 표현한 시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사무엘 윤이 샹송 ‘파리의 다리(Sous les ponts de Paris·술레 퐁드 파리)’의 가사를 생전 시인이 즐겨 부르듯 “술에 빠진 파리”라고 바꿔 부르자, 객석에도 웃음이 번졌다. 인터스텔라에 삽입돼 유명한 샤를 뒤몽의 ‘아뇨, 난 후회하지 않아요’에선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조화가 돋보였다.

이국적인 이미지를 통해 쓸쓸한 가을날의 풍경을 회화적으로 그려낸 시 ‘추일서정(秋日抒情)’이 기적 소리와 함께 마지막을 장식하자, 관객들은 한참 긴 여운 속에 잠긴 듯했다. 이날 무대는 김광균 시가 지닌 고독과 공감각적 이미지를 생생하게 구현하며, 관객이 한 편의 시 속을 천천히 걸어 나오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프리뷰 공연 ‘추일서정’에 이어 올 10월 16∼25일 강릉 전역에서 열리는 제3회 하슬라 국제예술제는 ‘사랑과 우정’을 주제로 더욱 확장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조재혁 예술감독은 “‘추일서정’은 하슬라국제예술제가 추구하는 예술적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서울에서 시작된 감동이 가을날 강릉에서 펼쳐질 ‘사랑과 우정’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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