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제79회 칸 국제영화제’가 12일 개막한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를 앞세운 한국 영화가 4년 만에 경쟁부문에 복귀하고, 박찬욱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아 황금종려상 경쟁을 주도하는 등 오랜만에 ‘K영화’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영화 산업적 측면에서 칸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기준 설정이다. 칸 영화제는 생성형 AI가 각본, 연기 등 핵심 창작 요소를 주도한 작품을 심사에서 배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도 AI 기술을 적극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1일 칸 영화제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칸 영화제는 생성AI가 시나리오와 영상 작업 등 핵심 영화 작업을 주도한 작품을 경쟁부문에 올리지 않는다. 이리스 크노블로흐 칸 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지난달 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AI가 이미 스튜디오와 편집실 등 창작 과정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면서도 “영화는 단순한 데이터 덩어리가 아닌 사람이 보여주는 비전”이라고 말했다.
이는 올해 영화제의 경쟁부문 선정 경향성에서 잘 드러난다. 올해 심사된 1541편의 장편 영화 중 경쟁부문에 오른 22편은 인간 중심의 서사가 강조된 작품이 대다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비터 크리스마스), 고레에다 히로카즈(상자 속의 양) 등 미국 할리우드 주요 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 대신 작가주의 감독의 작품이 명단을 채웠다.
다만 칸 영화제는 ‘영화 스태프’ 측면에서 작업을 보조하는 AI의 역할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영화제 중 열리는 세계 최대 필름마켓인 ‘마르셰 뒤 필름’에서 AI가 영화 제작 파이프라인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논의하는 세션을 진행하고, AI솔루션을 가진 스타트업들의 피칭 행사를 마련한 게 대표적이다. 칸 영화제 위성 행사로 ‘월드AI필름페스티벌’이 지난달 열리기도 했다.
영상 보정이나 음향 복원, 실사 촬영이 어려운 재난장면을 만드는 특수시각효과(VFX)처럼 인간의 창작을 전제로 한 기술적 도구로서의 AI는 인정하는 셈이다. 실제로 198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스티븐 소더버그가 향후 작품에 AI를 사용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영화계 유명 감독 중에서도 AI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영화계 관계자는 “AI가 영화 제작비부터 촬영 등 제작공정과 비용을 단축하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며 “다만 산업적 측면에서의 가능성과 예술적 측면에서의 기준을 명확하게 그어야 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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