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가 계속 이어지는 구조다. 시작부터 엔딩까지, 양파껍질 하나씩 벗겨가는 구조로 만들었다.”
영화 ‘호프’로 올해 제7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In Competition)에 진출해 전날 첫 상영을 가진 나홍진 감독은 1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한 호텔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신작 ‘호프’에 대해 “미스터리를 하나씩 벗겨가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호프’는 마을 호포에 출현한 괴생명체의 존재를 파악하고 이를 뒤따르는 영화로 올해 칸영화제 최대 논쟁작으로 부상한 상황이다. 이렇다 할 걸작이 보이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평이 나오는 가운데, ‘호프’는 24일 새벽(한국시간) 열리는 시상식을 앞두고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호프’가 시작된 건 우리가 사는 세계가 ‘불길함’으로 채워져 있다는 나 감독의 생각 때문이었다. 전작 ‘추격자’ ‘황해’ ‘곡성’도 불길하고 음습한 기운이 감돌지만, 이번 ‘호프’는 불길함의 근원을 모색하는 나 감독의 관심이 아예 우주로 향한다. 여러 장르가 혼합된 새로운 장르의 영화인데 SF적인 요소가 가장 강하다. 극중 인물이 마주하는 괴생명체는 ‘외계인’이고, 그들이 지구에 불시착했다는 설정이어서다.
“인간 안에서 이유를 찾다가 인간 안에서 이유를 찾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초자연적인 걸 찾고 돌아다니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우주로 나가게 됐다. 인간이 이 행성에 살아가면서 불길한 게 많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전쟁이 벌어질 것 같기도 하고, 임박한 것 같거나 실제로 벌어지기도 했다. 무자비한 폭력이 온 세상을 뒤집어엎을 것만 같은 불길함으로부터 이 영화를 시작했다.”
한 줄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 감독의 전작들은 언제나 해석과 비평의 대상이었지만, 이번 ‘호프’는 국내 개봉시 더 풍성한 논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물이 놓인 상황이나 환경, 또는 인물 그 자체도 대조를 이루고 있어 나 감독의 의도를 사유하게 만든다.
중심인물인 범석(황정민)은 호포읍 마을을 중심으로, 성기(조인성)는 숲을 무대로 괴생명체와 싸운다. 또 경찰인 범석은 직업윤리과 책임감에서 의무를 다하려 하는 반면, 사냥에 능한 마을 청년 성기는 본능에 입각해 호포를 지키려 한다. 그들은 도망치지 않는 ‘평범한 영웅들’인데 결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서로를 마주 보는 대립쌍이다. 한 명은 제도권에 속해 있고, 한 명은 본능에 기대어 움직인다. 그들은 질서가 무너진 세계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내 붙들거나, ‘몸이 먼저 반응하는’ 행동을 보인다.
“두 사람이 ‘핑퐁’을 하면서 관객은 입체적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저들의 공간과 이들의 공간을 번갈아 보여주려고도 했다. ‘진실’을 향해 계속 미스터리를 해결해나가면서 인물들은 읍내에서 숲으로, 다시 숲에서 읍내로 향한다. 두 공간을 대비시켰다.”
이 영화의 제목은 ‘호프’이지만 희망이 감지되지 않는 측면이 크다. 절망을 제거함으로써 희망이 찾아오리라는 기대는 지속적으로 무너진다. 극중 인물도 괴생명체도 모두 절망 속에서 사투를 벌여야 한다. 하지만 물러서진 않는다. 나 감독은 제목을 ‘호프(HOPE)’로 정한 이유에 대해 “희망과 희망이 충돌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희망은 성사되는 순간 기능을 상실하며, 희망이 이뤄지면 더 이상 희망이 아니게 된다. 이 영화는 쌍방의 모두가 희망을 품지만, 그 희망은 충돌한다. 사실 ‘희망’이라는 단어에서 시작됐는데 제목을 ‘희망’이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아서 ‘호프’가 맞겠다고 생각했다.”
나 감독의 장편영화는 모두 칸영화제에 진출했다. 하지만 칸에서 월드 프리미어(세계 첫 상영)가 이뤄진 건 ‘호프’가 처음이다. 나 감독은 “프리미어를 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이렇게 떨릴 줄은, 또 이 정도로 큰 기쁨을 얻을 줄은 몰랐다. 영화제가 선정하는 경쟁 부문 작품 리스트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기쁘다”고 털어놨다.
“촬영이 종료되는 순간까지도 짐작이 되는 영화가 아니어서, 원하던 그것을 지금 성사해 낸 건지 그것이 성사되지 않은 건지에 대한 판단도 다 못하는 지점이 있다. 사실 관객들이 미스터리에만 집중하는 걸 방해하고 싶어서 등장인물들이 이상한 얘기를 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도록 의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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