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20주년展
'총석정절경도' '백학도' 등
창덕궁 벽화 6점 한자리에
조선의 마지막 왕인 대한제국 순종황제와 순정효황후가 나라를 잃은 시름에 잠겨 살아가던 창덕궁에서 이들을 위로한 것은 다름 아닌 그림이었다. 창덕궁은 1910년 조선이 멸망한 뒤 1917년 화재로 전각이 모두 타버렸는데 1920년 궁 재건 과정에서 대형 벽화 6점이 제작돼 내전의 희정당과 대조전, 경훈각을 장식했다. 이들 그림에는 금강산의 장엄한 풍경과 힘차게 날갯짓하는 봉황, 굽이굽이 산과 바다로 펼쳐진 신선 세계가 담겼다. 벽화가 완성된 지 6년 뒤 황제는 세상을 떠났고 황후는 거처를 옮겼다.
100여 년 전 그려진 우리나라의 마지막 궁중 회화인 창덕궁 벽화 6점이 한자리에 펼쳐진다. 국가유산청 국립고궁박물관은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특별전 '창덕궁의 근사(謹寫)한 벽화'를 이달 14일부터 오는 10월 12일까지 개최한다. 특히 만수무강의 의미로 신선 세계를 담아낸 그림으로 경훈각을 장식했던 노수현의 '조일선관도'와 이상범의 '삼선관파도', 대조전에 있던 김은호의 '백학도' 초본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창덕궁 벽화는 당시 화단을 주도했던 이들이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이홍주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전시 제목의 '근사'에 대해 "'삼가 올린다'는 뜻인데 이 벽화를 그린 화가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조선의 궁중 화가들과 달리 그림에 자기 이름을 남겼다"며 "근대 회화에서 작가 개인의 존재감이 부각되기 시작한 흐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대조전 벽화 '봉황도'에는 '오일영 근사'라는 묵서와 낙관이 새겨져 있다.
전시는 창덕궁의 희정당과 대조전, 경훈각을 전시장으로 옮겨온 듯 세 개의 방으로 구성됐다. 각각의 벽화는 공간의 쓰임새와 어우러진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왕의 집무실로 사용됐던 희정당을 장식했던 김규진의 '금강산만물초승경도'와 '총석정절경도'는 금강산의 절경을 가로 882.5㎝, 세로 195.5㎝에 달하는 대형 화폭에 담아 왕가의 변치 않는 위엄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박수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왕과 왕비의 침실인 대조전의 벽화는 화합의 의미가 담긴 화조화로, 휴식처로 사용됐던 경훈각의 벽화는 장수를 상징하는 신선도로 그려졌다"고 설명했다.
대조전 대청 서쪽 벽을 장식했던 김은호의 '백학도'는 초본과 정본이 나란히 걸려 벽화의 제작 과정을 가늠케 한다. 초본은 종이에 먹과 유탄으로 드로잉한 스케치 작품인데, 곳곳에서 메모와 수정의 흔적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송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