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1946)

1 day ago 3
  •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자각과 강한 고립감이 상상 속 서사와 결합하며 글쓰기의 출발점이 됨
  • 머릿속에서는 오랫동안 장면과 감각을 세밀하게 이어 붙이는 내면 서사가 계속 흘렀고, 열여섯 살 무렵에는 단어의 소리와 배열 자체에서 오는 언어적 쾌감도 또렷해짐
  • 산문을 쓰게 하는 힘은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의 네 축으로 나뉘며, 시대가 주제를 정해도 초기의 정서적 태도는 쉽게 사라지지 않음
  • Burma, 빈곤, Spanish Civil War를 거치며 중심축이 전체주의 반대민주적 사회주의 지지로 기울었고, 1936년 이후의 진지한 작업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방향을 따르게 됨
  • 정치와 예술을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글쓰기예술로 만들려 했고, 정치적 목적이 약할수록 문장은 쉽게 생기를 잃고 허위와 장식으로 미끄러진다고 봄

어린 시절과 글쓰기의 시작

  • 다섯 살이나 여섯 살 무렵부터 장차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자각이 있었고, 열일곱에서 스물넷 사이에는 그 생각을 버리려 했지만 결국 책을 써야 한다는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함
  • 세 남매 중 가운데로 자랐고 아버지를 여덟 살 전까지 거의 보지 못했으며, 이런 조건과 다른 이유들로 외로움이 컸고 학교 시절 내내 인기를 얻지 못하는 버릇도 생김
  •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 속 인물과 대화하는 습관이 일찍부터 있었으며, 고립감과 저평가당한다는 감정이 문학적 야심과 뒤섞여 자라남
  • 단어를 다루는 재능과 불편한 사실을 정면으로 보는 힘이 자신에게 있다고 느꼈고, 일상에서의 실패를 보상하는 사적인 세계도 그 안에 만들어짐
  •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에 실제로 종이에 적은 진지한 글은 반쪽짜리 몇 장에도 못 미쳤고, 네다섯 살에는 어머니가 받아 적은 첫 를 썼으며 열한 살에는 전쟁을 소재로 한 애국시가 지역 신문에 실리고 2년 뒤 Kitchener의 죽음을 다룬 다른 시도 실림
  • 그 뒤로 Georgian 풍의 자연시와 짧은 소설도 시도했지만 대체로 미완성이거나 실패에 가까웠고, 그 시기 종이에 남긴 진지한 작업의 총량은 매우 적었음

초기의 문학 훈련과 머릿속의 서사

  • 학교 과제 외에도 주문받은 글, 반쯤 희극적인 시, 운문극, 학교 잡지 편집처럼 빠르게 생산하는 글쓰기를 계속했지만 큰 즐거움은 크지 않았음
    • 열네 살에는 Aristophanes를 흉내 낸 운문극을 약 일주일 만에 썼고, 인쇄본과 필사본 학교 잡지 편집도 도왔음
    • 당시 잡지들은 형편없는 익살물에 가까웠고, 지금의 값싼 저널리즘보다도 덜 공들여 쓴 셈이었음
  • 이런 작업과 나란히 15년 이상 자신에 대한 연속적인 내면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계속 이어감
    • 아주 어릴 때는 Robin Hood 같은 모험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이었지만, 곧 자기애적 환상보다 자신이 하는 일과 보는 것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쪽으로 바뀜
    •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고, 햇빛이 비치고, 거리에서 고양이가 마른 잎을 쫓는 장면처럼 감각적 세부를 이어 붙이는 서술이 몇 분씩 머릿속에서 계속 흘러감
  • 이 습관은 스물다섯 살 무렵까지 이어졌고, 알맞은 단어를 찾으려 애쓰면서도 거의 강박처럼 묘사를 이어가게 됨
  • 나이에 따라 좋아하던 작가들의 문체가 이 내면 서사에 스며들었겠지만, 기억하는 한 언제나 꼼꼼한 묘사성은 유지됨

단어의 즐거움과 초기 소설의 지향

  • 열여섯 살 무렵에는 단어 그 자체의 소리와 연상에서 오는 순수한 언어적 쾌감을 갑자기 발견함
    • Paradise Lost의 구절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반응을 일으켰고, he 대신 hee라고 적은 철자도 추가적인 즐거움을 줌
  • 사물을 묘사해야 한다는 충동은 이미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시절 쓰고 싶었던 책의 성격도 비교적 분명해짐
  • 불행한 결말을 가진 거대한 자연주의 소설, 세세한 묘사와 눈에 띄는 직유, 소리 자체를 위해 쓰인 장식적 문단이 가득한 책을 쓰고 싶어 함
  • 서른 살에 완성한 첫 소설 Burmese Days도 훨씬 전부터 구상해 온 바로 그런 종류의 책에 가까웠음

작가의 동기와 형성 과정

  • 작가의 동기를 따지려면 초기 성장 과정부터 봐야 한다고 여김
  • 다루는 주제는 자신이 사는 시대가 정하지만,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형성된 정서적 태도는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움
  • 기질을 단련하고 미숙한 단계나 비뚤어진 기분에 고착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초기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글을 쓰게 하는 충동 자체도 죽게 됨
  • 생계 문제를 제외하면 산문을 쓰는 동기는 네 가지 큰 축으로 정리됨
  • 순전한 이기심은 똑똑해 보이고 싶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싶고, 죽은 뒤에도 기억되고 싶고, 어린 시절 자신을 무시한 어른들에게 되갚고 싶은 욕망을 가리킴
    • 이런 성향은 작가만이 아니라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변호사, 군인, 성공한 사업가 등 상층의 사람들에게 널리 나타남
    • 서른 살이 지나면 대부분은 개인적 야심을 접거나 타인을 위해 살거나 고된 노동에 묻히지만, 재능 있고 고집 센 소수는 끝까지 자기 삶을 밀어붙이며 작가도 여기에 속함
    • 진지한 작가는 전반적으로 저널리스트보다 더 허영심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지만 돈에는 덜 관심을 둠
  • 미학적 열정은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단어와 올바른 배열 속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힘을 뜻함
    • 소리와 소리의 충돌, 좋은 산문의 단단함, 좋은 이야기의 리듬에서 즐거움을 얻고, 가치 있다고 느낀 경험을 남과 나누고 싶어 함
    • 소책자나 교과서 같은 글을 쓰는 사람도 마음에 드는 단어와 구절, 활자 모양이나 여백 폭 같은 비실용적 요소에 끌릴 수 있음
    • 철도 안내서 수준을 넘는 책이라면 미학적 고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음
  • 역사적 충동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참된 사실을 찾아내 미래 세대를 위해 저장하려는 욕구임
  • 정치적 목적은 가장 넓은 의미의 정치로,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사회의 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욕구임
    •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에 속함

정치로 기울게 된 계기

  • 이 네 가지 충동은 서로 충돌하고 시기마다 비중도 달라지며, 성인이 될 무렵의 본성만 놓고 보면 처음 세 가지가 네 번째보다 더 강했다고 적음
  •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화려하거나 단순히 묘사적인 책을 썼을 수도 있고, 자신의 정치적 충성도 거의 의식하지 않은 채 지냈을 수 있음
  • 실제로는 일종의 팸플릿 작가가 되는 쪽으로 밀려갔고, 그 전개에는 구체적인 체험이 이어짐
    • Burma에서 Indian Imperial Police로 5년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직업에 종사함
    • 그 뒤 빈곤과 실패감을 겪으며 권위에 대한 자연스러운 증오가 더 강해졌고, 노동계급의 존재도 처음으로 온전히 의식하게 됨
    • Burma에서의 경험은 제국주의의 성격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했지만, 아직 정확한 정치적 방향까지 주지는 못함
  • Hitler와 Spanish Civil War 같은 사건들이 이어졌지만 1935년 말까지도 분명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고, 그때 쓴 짧은 시에 그 딜레마를 담음
    • 시에는 더 평온한 시대의 성직자나 자연 속 삶을 꿈꾸지만, 실제 시대는 꿈꾸기 어렵고 금속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계로 바뀌어 있다는 이미지가 반복됨
    • priest와 commissar 사이를 걷는 존재로 자신을 그리며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감각이 드러남
  • 1936~37년의 Spanish war와 다른 사건들이 저울추를 돌려놓았고, 그 뒤부터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분명히 알게 됨
  • 1936년 이후의 모든 진지한 작업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자신이 이해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쓰임
  • 이런 시대에는 그런 주제를 피한 채 쓴다는 생각 자체가 무의미하며,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그 문제를 쓰게 되고 차이는 어느 편에 서서 어떤 접근을 택하느냐에 달림
  •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더 의식할수록 미학적·지적 온전함을 희생하지 않고도 정치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커짐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기

  • 지난 10년 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정치적 글쓰기예술로 만드는 일이었음
  •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출발점은 늘 편가르기의 감정과 불의에 대한 감각이며, 드러내고 싶은 거짓말이나 주목시키고 싶은 사실이 먼저 떠오름
  • 책이나 긴 잡지 글을 쓰는 일은 사람들에게 들리게 만드는 일이 우선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미학적 경험이 아니면 끝까지 써낼 수 없다고 봄
  • 자신의 작업을 돌아보면 노골적인 선전물 속에도 전업 정치인이라면 무관하다고 여길 요소들이 많이 들어 있음
  • 어린 시절에 얻은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버리고 싶지도 않으며,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산문 문체에 대한 강한 감각을 유지하고 땅의 표면과 단단한 사물, 쓸모없어 보이는 정보의 조각들을 계속 좋아하게 될 것이라 적음
  • 해결해야 할 일은 뿌리 깊은 취향과 혐오를, 이 시대가 모두에게 강요하는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과 화해시키는 데 있음

진실성과 형식의 충돌

  • 이런 화해는 쉽지 않고, 구성과 언어의 문제를 낳으며 무엇보다 진실성의 문제를 새롭게 일으킴
  • Spanish Civil War를 다룬 Homage to Catalonia는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책이지만, 대체로는 일정한 거리감과 형식 감각을 지키며 쓰였음
  • 그 책에서는 문학적 본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전체 진실을 말하려고 매우 애씀
  • 그러나 Franco와 공모했다는 비난을 받은 Trotskyists를 변호하기 위해 신문 인용문 등이 길게 들어간 한 장이 포함되어 있고, 이런 장은 1~2년만 지나도 보통 독자에게 흥미를 잃게 만들어 책을 망가뜨릴 수 있음
  • 존중하는 한 비평가는 그 대목 때문에 좋은 책이 저널리즘으로 바뀌었다고 꾸짖었고, 그 지적이 사실이라고 인정함
  • 그럼에도 영국에서 극소수만 알 수 있었던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거짓 고발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달리 쓸 수 없었고, 그 일에 분노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 책도 쓰지 않았을 것이라 적음

언어, 문체, 그리고 Animal Farm

  • 언어의 문제는 더 미묘해서 길게 다루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최근 몇 년 동안은 덜 그림처럼 쓰고 더 정확하게 쓰려 애써 왔다고 밝힘
  • 어떤 문체든 완성할 무렵이면 이미 그 문체를 넘어선 상태가 된다고 느낀다고 적음
  • Animal Farm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충분히 의식한 채 정치적 목적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하려 한 첫 책이었음
  • 7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지만 비교적 곧 다른 소설을 쓰고 싶어 했으며, 모든 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겠지만 자신이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은지는 꽤 분명히 알고 있다고 적음

글쓰기의 고통과 좋은 산문

  • 앞부분만 돌아보면 글쓰기 동기가 전적으로 공공정신에서 나온 듯 보이지만, 그런 인상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고 선을 그음
  • 모든 작가는 허영심, 이기심, 게으름을 지니고 있고, 그 동기의 가장 깊은 곳에는 수수께끼 같은 무언가가 놓여 있음
  • 책을 쓰는 일은 고통스러운 병과 오래 씨름하는 듯한 끔찍하고 소모적인 투쟁이며,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악마에게 몰리지 않는다면 그런 일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 적음
  • 그 악마는 아기가 관심을 끌기 위해 울부짖게 만드는 본능과 같은 것일 수도 있음
  • 동시에 읽을 만한 글을 쓰려면 끊임없이 자신의 개성을 지워내려 애써야 하고, 좋은 산문은 창유리와 같음
  • 어떤 동기가 가장 강한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어떤 동기를 따라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고 정리함
  • 자신의 작업을 돌아보면 정치적 목적이 부족했던 곳에서는 늘 생기 없는 책이 나왔고, 의미 없는 문장과 장식적 형용사, 전반적인 허위로 쉽게 미끄러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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