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 담은 계란 다 같이 깨졌다”…호르무즈가 무너뜨린 투자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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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이 원유를 더 많이 팔겠다고 발표하면 국제유가는 대개 떨어진다. 공급이 늘면 가격이 떨어지는 경제학 상식에도 부합한다.

그런데 5월 이후 상황은 이런 상식과 맞지 않는다. 아랍에미리트(UAE)가 5월 1일부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및 OPEC+에서 탈퇴했다. UAE는 OPEC 안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에 이은 3위 산유국으로 OPEC 전체 생산량의 약 12%를 차지한다. UAE가 카르텔을 박차고 나와 원유를 더 많이 팔겠다고 선언한 셈이라 경제 상식으로 보면 유가는 떨어지는 것이 맞다. 하지만 발표 직후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6월물은 배럴당 111.26달러로 전장 대비 2.8% 올랐고, WTI 선물가도 3.7%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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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과 다르게 유가가 반등한 배경에는 호르무즈 해협이 있다. 세계로 나가는 원유 가운데 약 20%가 호르무즈를 거치는데, 통로가 막혀 있는 이상 산유국이 더 팔겠다고 약속해도 원유는 시장에 들어오지 못한다. 지정학 여건이 시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수요 공급의 법칙은 물론 60년 묵은 투자 상식 하나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산을 여러 곳에 나눠 두면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분산투자 공식이다.

호르무즈가 OPEC 전체 흔들었다

OPEC는 1960년 결성 이후 회원국 생산량을 미리 정해 공급을 조절하며 유가를 떠받쳐왔다. 이 카르텔의 한복판에 자리한 사우디는 가격이 너무 떨어지면 자국 생산을 줄여 가격을 받쳐주는 안전판 역할을 도맡았고 시장에서는 “사우디가 유가의 안전판”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호르무즈가 닫히면서 사우디라는 안전판도 함께 흔들렸다. 사우디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작전에 협력하지 않았고 UAE는 사우디와 사이가 벌어진 것을 탈퇴 구실로 삼았다. UAE 생산 능력은 하루 약 430만 배럴에 이르지만 카르텔이 정한 생산 한도 때문에 실제로는 절반 수준만 뽑아왔는데 호르무즈가 막힌 뒤로는 생산량이 한 단계 더 떨어졌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전경. <OPEC>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전경. <OPEC>

OPEC 회원국 이탈 자체는 처음이 아니다. 2019년 카타르, 2020년 에콰도르, 2024년 앙골라가 차례로 떠나면서 회원국은 이미 줄어들고 있었다. 다만 세 나라는 OPEC 안에서 비중이 작은 산유국이었던 반면 UAE는 사우디, 이라크와 함께 OPEC 핵심 3국에 속한다.

핵심 산유국이 OPEC에서 빠져나간 사례는 약 60년 만에 처음이고 다음 이탈 후보로 카자흐스탄과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까지 거론된다. UAE 이탈로 회원국은 11개국으로 줄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사막 한가운데서 다국적군 대원들이 장갑차 탄약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1991년 걸프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사막 한가운데서 다국적군 대원들이 장갑차 탄약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시장은 다음 방향을 잡지 못한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OPEC 균열에 촉을 곤두세우는 까닭은 카르텔이 맡아온 시장 안정 역할 때문이다. 과거 중동 분쟁기때 시장이 개전 직후 방향을 찾을 수 있었던 배경에도 OPEC이 결국 유가 변동성을 잡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1991년 걸프전 직전 한 달 사이 다우지수는 2593에서 2509까지 떨어졌다가 개전 한 달 만에 2913, 석 달 만에 3004까지 올랐다. 2003년 이라크전에서도 같은 곡선이 나와 다우지수는 개전 한 달 전 7915까지 떨어졌다가 석 달 뒤 9201까지 회복했다. 월가 격언인 “루머에 사고 뉴스에 판다”가 그대로 작동한 셈이다.

이란 전쟁 또한 처음에는 같은 양상이었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 직후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글로벌 증시는 동반 급락했다가, 4월 8일 미국과 이란이 휴전에 합의하자 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4월 17일 이란 외교장관이 호르무즈 해협을 일시 개방하겠다고 발표한 뒤에는 유가가 하루 만에 10% 넘게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휴전 합의에도 호르무즈는 사실상 봉쇄 상태가 이어지고 있고, 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호르무즈가 다시 막히면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에서 13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예상한다.

예멘 사나에서 열린 반이스라엘 시위대가 미국의 폭격으로 사망한 알리 하메네이 초상화를 들고 항의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예멘 사나에서 열린 반이스라엘 시위대가 미국의 폭격으로 사망한 알리 하메네이 초상화를 들고 항의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차이는 안전판에 있다. 걸프전이나 이라크전 직후에는 사우디라는 안전판이 자리를 지켰기에 시장이 사우디를 보고 다음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이란 전쟁기에는 안전판 자체가 사라지는 중이라 시장은 다음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여진을 거듭하고 있다.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틀렸다

평소 주식과 부동산, 코인은 주로 반응하는 경제 변수가 달랐다. 주식은 기업 이익과 경기 전망에, 부동산은 금리와 인구, 정부 정책에, 코인은 위험자산 선호와 달러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자산마다 반응하는 변수가 다르기 때문에 한 자산이 약세일 때 다른 자산이 강세를 보이는 일이 자주 일어났고, 분산투자가 작동하는 배경에는 각 변수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지정학 변수가 시장을 좌우하면 상식은 무너진다. 가장 핵심적인 변수는 유가지만 파급 효과는 경제 전반에 미치고 모든 자산을 뿌리째 뒤흔든다. 호르무즈가 막혀 유가가 오르면 기업 생산비용이 늘고 가계 소비 여력은 줄어 기업 이익이 약해진다.

산업연구원은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국내 제조업 생산비용이 평균 0.71%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유가 상승은 물가도 끌어올려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미루게 만들고, 대출 부담이 커지면서 부동산도 약세가 된다. 그동안 하락 추세였던 공사비도 다시 반등하면서 부동산 시장은 단기 압박을 받았다.

유가 상승이 안전자산 선호 현상을 불러오면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코인가격도 함께 빠진다. 평소 따로 움직이던 세 변수가 호르무즈 봉쇄라는 하나의 이슈로 인해 영향을 받으면서 모든 자산값이 ‘하락’이라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이스라엘군이 북부 접경지에서 레바논 남부 지역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북부 접경지에서 레바논 남부 지역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주식과 부동산, 코인이 같이 움직이는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자주 일어나지도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한 번 빠졌다가 회복하는 데 1년 가까이 걸렸고, 2020년 코로나 충격 때도 회복까지 분기 단위 시간이 필요했다. 차이는 빈도다. 이란 전쟁기에는 외교장관 발언 한마디에 같은 분기 안에서 폭락과 반등이 번갈아 나타났다.

2월 28일 공습 직후 글로벌 증시가 동반 급락했고 비트코인은 한때 6만5000달러에서 6만3000달러까지 빠진 반면, 안전자산인 금은 트라이온스당 5400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한 달 반 뒤인 4월 17일에는 같은 외교장관 한마디에 유가가 하루 10% 넘게 빠지면서 위험자산이 일제히 급반등했다. 한 분기 안에 폭락과 반등이 모두 나타나는 환경을 투자자는 그대로 목도하고 있다.

안전판이 사라진 시대로 들어선다

분기 단위로 반복되는 충격의 배경에는 시장이 방향을 잡던 좌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 냉전시대에 시장은 미국 진영 안에서 미국이라는 한 축을, 1990년대 이후에는 미국이라는 단일 축을, 2010년대 이후에는 미·중 두 축을 보고 움직였다. 어느 시기든 시장이 방향을 잡을 좌표는 정해져 있었다.

이란 전쟁 이후 좌표가 흔들렸다. 사우디는 미국 작전에 협조하지 않았고, UAE는 사우디와 거리를 두고 OPEC을 떠났으며, 이란은 무너졌고,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은 각자의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언장담하는 것처럼 이란은 이미 붕괴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이 거둔 승리의 무게보다 무거운 사실은 따로 있다. 전통적인 미국 동맹이었던 사우디조차 미국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5월 1일 UAE가 OPEC을 떠났다. 60년 동안 통하던 자산별 분산투자 상식이 같은 분기 안에 깨지고 있는 것은 이런 시대 변화의 한 단면이다. 중동에서는 사우디와 이란이 동시에 약화됐고 이스라엘은 더 강경해졌으며 미국은 힘을 잃고 있다. 패권이 붕괴된 자리에는 억압이 걷힐지언정 혼란은 불가피하기 마련이라, 앞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같은 사건은 자주 일어날 것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같은 충격을 다른 나라보다 더 자주, 더 크게 받는다.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원유 의존도가 1위이고,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70.7%에 달하며, 이 가운데 99%가 호르무즈를 거쳐 들어온다.

자산 배분만으로 변동성을 흡수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안전자산 비중과 현금 여력, 지정학 변수를 읽는 시야가 함께 필요하다. 혜안을 갖춘 사람과 뇌동매매에 휩쓸리는 사람의 자산은 엄청난 격차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플러스 포인트>
▶지정학 변수는 수시로 점검하라.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OPEC이 흔들려도 유가는 반드시 떨어지지는 않는다. 섣부른 베팅은 금물.
▶평범한 자산 배분만으로는 부족하다. 현금과 금을 일정 수준으로 담아라.
▶한국 시장 올인은 위험하다. 한국은 대외 환경 변화에 가장 취약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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