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빌딩과 아파트 외벽에 매달려 하루를 보내는 청년이 있다. 끈 하나에 의지해 50m 상공을 오르내리며 건물의 외벽을 칠하고 보수하는 로프공(외벽 도장공). 흔히 ‘위험한 직업’으로만 인식되지만 그의 눈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경남 양산에 사는 변준성 씨(32)는 “두려움보다 책임감이 앞선다”며 “이 일이 이제는 천직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던 변 씨가 로프공 일을 시작한 것은 5년 전, 친구의 권유로 현장을 나가면서부터다. 그는 “처음엔 ‘저걸 어떻게 하지?’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단순한 생계 수단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책임감이 붙고,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결국 ‘이게 내 천직’이라는 확신까지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로프공의 하루는 깜깜한 새벽 4시~5시부터 시작된다. 6시까지 현장에 도착해 환복 후 팀원들과 아침을 먹고, 7시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점심을 제외하면 저녁 5시까지 공중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로프공들이 챙겨 다니는 기본 장비는 젠다이(옥상 난간에 로프를 고정하는 장치), 그네식 안전벨트(체중을 분산해 오래 매달릴 수 있는 장비), 추락방지대·코브라(추가 안전줄 역할), 로라대(줄이 건물 벽에 쓸려 끊어지는 걸 막는 바퀴 장치) 등이다. 그는 “장비를 챙기지 않는 건 상상조차 못한다"며 "안전수칙을 어기면 그 순간이 바로 사고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변 씨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은 마산의 한 신축 아파트였다. 복잡한 외벽 디자인 탓에 작업이 쉽지 않았지만, 완공 후 깔끔하게 바뀐 건물을 보고 주민들이 만족해하는 순간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는 “입주민들이 ‘새 옷 입혀줘서 고맙다’고 말할 때, 또 지나가다 제가 칠한 건물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언제부터 로프공 일을 시작하게 됐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경남권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청년 로프공 변준성입니다. 2020년 무렵,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던 중 진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친구의 권유로 아르바이트 삼아 로프 작업을 경험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직접 해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업무가 위험하진 않나요?
솔직히 위험한 일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안전수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지키면 위험은 크게 줄어듭니다. 실제 사고도 대부분 규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죠. 겉에서 보기엔 무조건 위험해 보일 수 있지만, 현장에서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멋있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두려웠던 건 뭔가요? 지금은 좀 익숙해졌나요?
대부분의 로프작업자가 공감할 텐데, 저도 고소공포증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밑을 내려다보지도 못해 옥상에서 포복으로 다니거나 기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꾸준히 하다 보니 점차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익숙해져서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 하루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쯤 현장에 도착합니다. 환복 후 팀원들과 아침 식사를 하고, 7시부터 작업 계획을 세워 정오까지 작업합니다. 점심 후 1시부터 다시 5시까지 일을 이어갑니다. 기본 장비로는 젠다이(로프를 고정하는 삼발이 지지대), 그네식 안전벨트(앉은 자세로 매다는 작업용 벨트), 추락방지대(코브라·추락 시 충격을 흡수하는 안전 장치), 로라대(로프 마찰을 줄여 이동을 돕는 롤러 장치) 등을 항상 챙깁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은 어디였나요?
작년 여름 마산의 롯데캐슬 아파트 신축 현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난해한 그래픽과 구조 때문에 고생했지만 완성된 모습을 봤을 땐 정말 멋졌습니다. 또 입주민들이 “아파트에 새 옷을 입혀줘서 고맙다”라고 말해줄 때, 그리고 제가 칠한 건물을 스스로 바라볼 때 가장 뿌듯합니다.
▷ 건강 문제는 없으신가요?
로프공도 3D 업종(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뜻하는 ‘Dirty·Difficult·Dangerous’의 약자)입니다. 손목·무릎 관절에 염증이 생겨 고생하기도 합니다. 만성으로 이어질까 걱정되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절합니다. 뜨거운 햇빛 아래서 일하다 보니 하얀 피부와는 인연이 끊겼습니다(웃음).
▷ 날씨나 계절에 따라 일의 차이가 있나요?
비가 오거나 바람이 강하게 불면 작업이 불가능합니다. 장마철이나 혹한기에는 저희끼리 ‘방학’이라 부르며 쉬기도 하죠. 반면 혹서기에는 더위만 버텨내면 작업은 계속됩니다.
▷ 사고를 겪은 적이 있나요?
작업이 미숙하던 때에는 단단하지 않은 구조물에 로프를 결속했다가 그 구조물이 파손되면서 1~2m 정도 추락한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철렁하고 식은 땀이 줄줄나요. 당시 제가 차고 있던 페인트통은 지상 차량 위로 떨어졌습니다. 만약 사람이 있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죠. 지금도 아찔했던 기억이 납니다.
▷ 수입은 어느 정도 되나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비슷한 나이대에 비해 부족함 없이 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일당이 지역마다 다르지만 30~40만원대입니다. 처음부터 돈만 보고 시작하면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조공으로 시작하면서 하나하나 조금씩 배워가야 합니다.
▷ 이 일이 ‘직업’이 아니라 ‘기술’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나요?
저는 자부심이 큽니다.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노가다’로만 보는 시선이 있어 아쉽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도 존중의 눈빛으로 바라봐 주고 있어요.
▷ 동료들 중 사고로 그만둔 경우도 많나요?
제 주변에서는 큰 사고로 일을 그만둔 경우는 없었습니다. 다만 고소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해 중도에 그만둔 분들은 많습니다.
▷ 후회한 적은 없나요?
처음엔 또래와 비교하며 초라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더 빨리 시작하지 못한 걸 후회합니다. 이 일은 제 천직입니다.
▷ 계속 일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 일이 단순히 생계 수단이 아니라 즐겁고 감사한 일입니다. 내가 작업한 건물을 지나갈 때마다 뿌듯함을 느끼고, 작은 제 손길이 큰 건물을 완성해 간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최근에는 이 일을 하며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생겼습니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미래를 이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는게 원동력인 것 같아요.
▷ ‘일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생계를 넘어 제 삶의 일부입니다. 저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 준 고마운 일이고, 오래도록 사랑하며 하고 싶습니다.
▷ 또래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모든 일을 처음 시작할 땐 두려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걱정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고 또, 도전할 만한 가치 있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뭐든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도 강한 체력과 정신력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체력도 약하고 배움이 느린 사람도 해낼 수 있었으니, 여러분도 충분히 뭐든 잘 할 수 있습니다.
▷ 이 일이 '천직 같다'고 느끼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엔 슬럼프도 있었고 자신감도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 능력이 눈에 띄게 늘고, 주변에서 인정받으니 흥미와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이 자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순간 이 일이 제 천직임을 확신했습니다.
▷ 앞으로 어떤 꿈이나 계획이 있으신가요?
당장 목표는 저만의 작업팀을 꾸리는 것입니다. 지금의 팀장님과 팀원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지조차 의문이 들 만큼 현재 팀이 좋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의 팀처럼,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늘 웃으며 함께할 수 있는 좋은 팀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했지만 매일 퇴사를 고민하는 30대 청년,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고 제2의 삶을 개척한 40대 가장,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70대 청소 노동자까지. '직업불만족(族)'은 직업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목소리를 기록합니다. 당신의 평범한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깊은 위로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일하며 살아가는 세상 속 모든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하단 구독 버튼을 눌러주시면 직접 보고 들은 현직자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