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생시에 관한 물음[내가 만난 명문장/조온윤]

1 day ago 3

“꿈속에서 행복했다면 그것도 인정돼요?”

―아룬다티 로이 ‘작은 것들의 신’ 중

조온윤 시인

조온윤 시인
꿈에서 괴로웠다면 그것도 인정될까? 초년 시절 나는 종종 꿈에서도 일을 했다. 과한 업무량과 압박감에 퇴근하고도 일 생각으로 경도됐던 탓이다. 꿈 얘기를 했더니 친구는 무급에 두 배로 일한 거라며 놀려댔다. 가벼운 농담이었겠지만, 이런 말들은 내게 ‘꿈에서의 노동은 왜 대가가 없을까’ 하는 의문을 안겼다. 꿈의 시간은 왜 인정되지 않는가. 꿈은 사유재산이다. 예부터 과거를 앞둔 선비들은 부적을 구하듯 용꿈을 꾼 이를 찾아 매몽을 하고, 소유권을 보증하려 증인이나 문서를 남기기도 했다. 삼국유사에는 문희 설화가 나온다. 문희는 언니 보희가 들려준 기이한 꿈이 예사 길몽이 아님을 눈치채고 꿈을 사는데, 이후 김춘추를 만나 훗날 각전에 이르는 연을 맺는다. 길몽을 사고파는 건 요즘도 여전한 풍속이다. 타인과 주고받을 수 있는 재화로서 꿈을 시인하는 것이다.

꿈과 생시는 이렇듯 서로를 넘나든다. 정말로 길몽에 효험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좋은 꿈은 적어도 우리에게 기대와 희망을 주니까. 그렇다면 간밤에 좋은 꿈에 들지 못하도록 훼방한 이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게 아주 허황된 일은 아닐 것이다. 현실을 넘어 꿈속의 노동을 촉발하는 이들에게, 사유지로서의 꿈을 침입하는 이들에게, 대가는 바라지도 않으니 평온한 꿈에 쉴 자유를 보장해 주기를.

소설 ‘작은 것들의 신’에서 주인공 암무는 금기된 현실의 사랑을 꿈에서나마 이룬다. 행복한 꿈을 꾸었다는 그녀에게 쌍둥이 아들 에스타가 묻는다. 질문을 받은 뒤로 암무는 꿈에서 느낀 사랑을 현실에서의 감정으로 받아들인다. 꿈에서 슬프면 나는 슬픈 게 되는가? 꿈에서 사랑하면 나는 사랑한 게 되는가? 당신도 꿈에서 그런 적 있다면 대답을 들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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