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발레단이 창단 이후 두 번째 작품인 ‘백조의 잠수’로 오는 9일부터 나흘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관객을 만난다. ‘백조의 잠수’는 감각적인 안무와 연출로 주목받는 안무가 차진엽(46·사진)의 신작이다. 그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안무 감독을 맡아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 서울시발레단은 서울 노들섬의 새로운 연습실에서 둥지를 틀고 차진엽과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지난달 25일 이곳에서 안무가 차진엽과 만나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시발레단으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은 뒤 어떤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야 발레단에 어울릴지 고민했어요. 그러다 최근 제가 참여하고 있는 잠수 훈련이 떠올랐어요. 육지의 소리를 끊어내고 깊이 잠수해 물아의 경지에 이르는 순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현재 작품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차진엽은 프리다이빙 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다. 깊이 물에 잠겨들수록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명상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백조의 잠수’는 차진엽이 2020년부터 연작으로 선보여온 창작물 ‘원형하는 몸’과 궤를 같이하게 됐다. 동작보다 몸이란 본질에 집중한다는 의도를 계승했다. 재미있는 점은 물이 지니는 상징성도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원형하는 몸’에서도 물이 상징적으로 등장하고 ‘백조의 잠수’도 마찬가지다. ‘원형하는 몸’에서는 딱딱한 얼음에서 녹아내린 ‘똑똑’ 물방울 소리가 생명의 시작을 알린다면 ‘백조의 잠수’에서는 깊은 바닷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뽀글뽀글’ 물방울 소리가 원초적인 순간을 은유한다.
차진엽은 “물속 깊이 있다 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 배 속의 시절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태고의 느낌이랄까요, 그런 감상을 단원들과 대화하면서 서로의 합을 맞춰나가고 있습니다.”
차진엽이 꾸준히 보여온 ‘원형’은 둥근 것을 뜻하는 원(circle), 본질과 근원의 원(原), 순환(cycle)을 의미하는 원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항상 나의 춤이, 내 몸이 어떻게 자연을 비롯한 주변 환경과 어우러질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그런 탐구 과정을 계속 새로운 작품에 이어 나가는 거죠. 안무가·무용가로서 삶의 태도이기도 해요. 잠수 훈련을 하는 것도 깊은 물의 흐름에 내 몸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적응하는지 깨닫기 위해서였어요.”
차진엽은 “무용수 한 사람을 관찰하고 알아가는 것도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무용수들과의 대화도 영감을 주기에 중요시한다고. “내면이 반짝반짝 빛나는 무용수들이 보일 때가 안무가로서 무용가에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에요. 이 무용수를 무대에서 어떻게 더 빛나게 해줄지를 고민하게 되거든요.”
차진엽은 안무가이기 전에 LDP무용단 창단 멤버이자 영국 호페시 섹터, 네덜란드 갈릴리 등 세계적 무용단에서 활약한 현대무용가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무용수 입장을 오가며 그들을 지도한다. 이날도 무용수들 앞에서 직접 동작을 해 보이며 완성도를 다져가는 모습이었다.
발레에서 백조란 발레리나 그 자체이면서 발레 대표 동작인 브레브레와 폴 드 브라를 생각나게 하는 상징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노력을 말하고 싶을 때 백조를 빗댄다. 보이는 모습은 우아하지만 수면 아래 백조의 발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특징 때문.
차진엽은 이번 공연을 통해 “외면으로만 판단되는 물상의 본질을 발견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대사회의 광란에 가까운 속도와 자극에서 벗어나 수면 아래로 잠수하듯, 온전히 몰입하는 경험이 관객에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