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0권, 그 길고 치열했던 기록
1998년 시작된 세계문학의 항해가 500번째 부두에 닿았다. 민음사 편집부가 출간한 '세계문학전집 이야기'는 긴 항해의 기록이자 치열했던 고민들의 연대기로 읽힌다. 누구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얽힌 추억은 다채롭겠지만 이 책을 펼치면 추억은 더 깊어진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최초 기획자는 1990년대까지 민음사 편집장, 편집주간으로 일한 이영준이었다. 당시 그는 박맹호 민음사 회장을 설득했다.
"우리가 내려는 세계문학전집은 과거의 문학 전집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문학에 대한 정의 자체를 바꾸는 전집을 만들고 싶습니다."
김우창·유종호 선생이 기획에 참여하면서 세계문학전집이 태동했고, 첫 출간은 1~10권이었다. 그 후 28년이 흘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놀라운 통계에 다다랐다. 전집 500권의 모든 페이지를 더하면 19만4000쪽. 이를 세로로 이으면 43.65㎞이니 마라톤 풀코스 거리를 능가한다. 총 글자 수는 1억5520만자, 200자 원고지 77만장 분량으로 국제 규격 축구장의 5개 크기가 된다.
가장 긴 제목은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열다섯 자, 가장 짧은 제목은 장폴 사르트르의 '말'로 한 글자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는 단 18일 만에 집필됐고, 괴테의 '파우스트'는 60년이 걸려 최장기 집필 기간이었으나 나란히 전집에 이름을 올렸다.
통계 이면에서 전집을 만드는 막후 공로자들의 글에 눈길이 간다.
미술부 정보환은 이 전집의 표지를 처음 디자인한 인물이다. 그는 회고에서 전집이 '수백 권 프로젝트'가 되리란 상상을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특정한 스타일을 과시하기보다, 다양한 경우를 수용할 수 있는 구조를 선택했기에 시간이 지나도 쉽게 낡지 않았다."
물류부 박광용은 민음사 파주 서고에서의 삶을 돌아본다. 그곳엔 책 150만부를 보관할 수 있고, 적정 보유량은 115만부라고 한다. "물류부 업무는 눈에 잘 보이는 화려한 일은 아니지만, 하루라도 멈춰선 안 된다. 책이 인쇄되어 나오는 것이 끝이 아니다."
밀란 쿤데라와 민음사가 인연을 맺는 과정에서 쿤데라의 배우자 베라 쿤데라가 민음사에 손글씨로 보낸 팩스 한 장,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의 예감된 역주행, 노벨상 발표 후 닷새 만에 독자의 손에 도착할 수 있었던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 등 비화도 자세하다.
세계문학전집은 단지 문학의 우연한 군집이 아니다. 어떤 작가가 선택되고 어떤 언어를 소개하는지에 따라 '지도'는 다시 그려진다. 책이 하나의 세계를 열어젖히는 열쇠라면 전집은 다시 그려진 지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다음 문장에 밑줄을 긋게 된다.
"문학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지식의 파편이 아니라 세계를 대하는 단단한 자세이며, 거리 두기 역시 하나의 자세임은 물론이다. 우리가 문학을 통해 얻는 것은 삶에 대한 명쾌한 정답이 아니다. 세계를 대하는 고유한 '태도' 그 자체인 것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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