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기 사건서 철저히 짓밟힌 ‘상피제’
‘사각지대’ 경찰이 이제라도 지킬까
공공영역 어디서도 살려야 할 절제의 원칙
염치 있는 정당이 이기는 정치여야
상피제는 흔히 3가지로 구성된다. ‘제척’은 재판관이나 검사의 가족 혹은 학연 등으로 연결된 사적 연고자가 재판이나 수사의 대상이 됐을 때 법원과 검찰이 해당 판검사를 업무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기피’는 불공정한 절차를 우려하는 재판 및 수사 대상자가 재판부 혹은 수사검사의 교체를 신청하는 제도다. 이 밖에 사건을 담당한 판검사가 스스로 판단해 손 떼는 것을 ‘회피’라 칭한다. 이번에 경찰이 밝힌 타 경찰서 이첩은 제척과 회피의 요소를 다 갖고 있다.
상피제는 국회나 언론 등 외부의 요구에 등 떠밀려 도입할 게 전혀 아니다. 경찰관 아들 사건이라면 지연 학연 근무연 없는 경찰 내 제3자가 수사하는 게 상식이다. 요즘 동네 아파트입주자회가 청소업체를 선정할 때도 대표자 누군가와 연관된 업체라면 그 인사는 배제한 채 논의하곤 한다. 하물며 경찰 간부 아들의 살인 사건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 지금의 경찰이 겪는 신뢰 붕괴에 비춰 보면 조직 이기주의의 눈으로 보더라도 경찰 손으로 먼저 제척 내지 회피를 했어야 마땅했다.
경찰은 검찰청이 폐지되는 10월부턴 수사를 사실상 전적으로 주도하는 중추적 수사기관이 된다. 이를 앞두고 국회에선 검찰 보완수사권의 100% 폐지냐, 예외적 허용이냐를 놓고 논쟁 중이다. 경찰은 민감한 정치 상황을 감안해 ‘경찰 가족의 살인 사건’이 공개되지 않는 게 유리하다고 계산했을 수 있지만, 큰 오산이다. 그럴수록 그 지역 경감의 아들이란 사실을 먼저 밝히고 더 엄정한 수사를 다짐했어야 했다. 경찰은 커진 몸집에 걸맞은 직무윤리를 갖추지도 못했고, 결론이 명백한 판단도 잘못 내렸다.더 놀라운 것은 국회에 제출한 장윤기 보고서다. 경찰은 “장윤기 사건은 경찰의 자정 능력을 보여준 사례”라고 자찬을 늘어놓았다. ‘우발적 살인’이란 경찰의 거짓 판단을 검찰이 보완수사로 뒤집은 사실은 없던 일 취급했다.
경찰의 염치 없음은 상피제 정신의 약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형사사법 밖에서 상피제 정신이란 절차가 공정한 것은 물론 공정해 보이기까지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 영역에선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때 최고위원에 도전하는 한 후보의 자격 논쟁은 아쉬움이 크다. 이 후보는 6억 원대의 돈을 받은 혐의로 1·2심에서 유죄를 받았다. 그런데 당 최고위는 “정치검찰의 잘못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출마에 ‘문제없음’ 결론을 냈다. 2심까지 유죄였다면 대법원의 무죄 파기환송이 나올 때까지는 당은 제척하고, 본인은 회피할 수는 없었을까.
3대 특검 잔여사건 처리 특검에서 쌍방울 측 간부를 과거 변호했던 인사가 특검보로 활동하며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을 수사한 일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의 이해충돌이라면 특검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본인이 알아서 특검에 참여 않거나, 특검팀 내에서 ‘다른 사건을 맡겠다’고 처음부터 밝혔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 특검보는 논란 끝에 쌍방울 사건에선 배제됐다. 한 공영방송 사장은 앵커 시절 윤석열 당시 대통령을 인터뷰하면서 김건희 여사가 받은 명품백을 ‘파우치, 외국 회사 조그마한 백’으로 표현했다. 명품백의 의미를 축소하려 했다는 지적이 뒤따랐는데, 그로부터 9개월 뒤 그는 사장직에 올랐다. 누구든 사장직에 도전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인터뷰 논란의 당사자가 그 대통령에게서 임명장을 받는 걸 젊은 세대에게 뭐라고 설명할 수 있나. 공영방송의 공적 가치를 위해 자중과 절제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나. 여기에 채 상병 순직 사건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인사의 주호주 대사 제안 수락, 재판 중임에도 국회 법사위에 참여해 법원을 상대로 질의하는 다수의 여야 국회의원들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정치적 반대파에 요구하는 공적 상피제 정신을 스스로에게 적용해야 한다.언제부턴가 공적 영역에서 욕망을 내놓고 달리는 일이 흔해졌고, 그런 일이 예전만큼 부끄러운 일로 여기지 않게 된 듯하다. 이번에 뭇매를 맞은 경찰 말고도 국가 시스템 전반에서 사라져 가는 상피제 정신을 강화하는 노력이 더 경주되길 바란다. 역설적이지만, 변화를 선도해야 하는 것은 역시 정치다. 자신의 이익 앞에서 제척하고 회피하는 일에 어느 정당, 어느 정파가 더 열심인지를 지켜보고 투표하는 것도 유권자의 몫이다.
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1 day ago
3
![[부음] 박장우(한화커뮤니케이션위원회 전무)씨 장모상](https://img.etnews.com/2017/img/facebookblank.png)
![[김종면의 브랜드 인사이트] ② 성공이 부른 그림자… K뷰티가 뜨자 짝퉁은 온라인으로 옮겨탔다](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7/21/news-p.v1.20260721.8bb30dcff26749bda1d3e7839cbe61bf_P3.jpeg)
![9988→9980 시대 中企, 글로벌에서 승부해야 [생생확대경]](https://www.edaily.co.kr/profile_edaily_512.pn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