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치제작소는 일본 전자 대기업의 맏형이었다. 매출과 시가총액 모두 일본 1위였다. 하지만 경쟁사들은 히타치를 ‘2~3등 집합소’로 불렀다. 300여 개 계열사와 30만 명 넘는 임직원을 거느린 거대 기업인데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제품이 하나도 없었다. 위기감도 없었다. 히타치의 주력 산업은 발전, 통신, 철도, 방위산업 등 인프라. 일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절대 망하지 않을 회사였다. ‘국내총생산(GDP) 기업’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였다.
위기는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며 시작됐다. ‘GDP 기업 히타치’는 일본 경제와 함께 ‘잃어버린 30년’을 상징하는 기업이 됐다. 반도체, 가전 등 대량 생산과 국내 인프라 시장이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던 히타치엔 유일무이한 기술이 없었다. 첨단 기술과 글로벌화로 상징되는 21세기에 접어들어 영업실적이 급감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반도체와 가전 사업은 한국과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겼고, 저출생·고령화로 성숙기에 접어든 인프라 사업도 부진에 빠졌다.
2008년 히타치는 7873억엔(당시 환율 기준 약 11조원)의 순손실을 냈다. 당시 일본 제조업 사상 최악의 기록이었다. 1990년대 1만엔에 육박하던 주가는 2009년 3월 6일 245엔까지 떨어졌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히타치도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로부터 약 17년 뒤인 2026년 2월 9일 히타치 주가는 5818엔으로 2009년 저점에 비해 24배로 불어났다. 히타치의 순이익은 2020년부터 5년 연속 5000억엔을 돌파했다. 경기 사이클과 무관하게 일정한 수익을 내는 맷집 탄탄한 기업이 된 것이다.
히타치 부활의 비결은 무자비한 사업재편이었다. 10여 년에 걸쳐 히타치금속, 히타치카세이, 히타치전선 등 모태 기업 3개를 모두 팔아 치웠다. 2009년 22개이던 상장 자회사는 하나도 남김없이 정리했다. 알짜 회사는 완전자회사로 전환했고 나머지는 매각했다. 그 돈은 ‘정보기술(IT) 솔루션 기업’으로 변화하기 위한 인수합병(M&A)에 썼다.
히타치는 이를 메이지유신 당시 존마게(일본식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가 그다음부터 머리카락이 자랄 때마다 이발소에 가야 했던 상황에 빗댔다.
2022년 마지막 남은 상장 자회사이던 히타치물류와 히타치건설기계를 매각하자 일본 언론들은 “10여 년에 걸친 히타치의 사업재편이 마침내 마무리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지난 21일 히타치는 가전 자회사인 히타치GLS를 일본 전자양판점 노지마에 매각하며 사업재편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사무라이 상투는 계속 깎아야"…인프라 IT 솔루션 회사로 대변신
히타치 혹독한 구조조정…상장 자회사 22 → 0개
“한 번 존마게(일본 사무라이식 상투)를 자른 이상 계속해서 머리를 깎을 수밖에 없습니다.”
히타치그룹 관계자는 몇 해 전 회사를 방문한 전영민 당시 롯데그룹 인재개발원장(현 중앙대 겸임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본식 문어발 경영에 과감하게 칼을 댄 후 시장 변화에 맞춰 사업 재편을 이어가는 히타치그룹을 메이지유신 당시 단발령으로 정기적으로 이발소를 찾아야 했던 사무라이에 비유한 것이다.
◇ 2000개 자회사가 모두 주력 계열사?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KKR의 공동 창업자 겸 회장인 헨리 크래비스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연재한 기고문에서 일본 기업이 얼마나 사업 재편에 인색한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 일본 CEO에게 ‘자회사는 몇 개입니까? 그중 핵심 자회사는 몇 개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자회사 수가 2000개이고, 2000개 모두 핵심’이라고 답하더라.”
히타치는 그중에서도 비효율의 대명사였다. 수많은 계열사가 각자도생하는 문화이다 보니 그룹 본사의 방침을 따르지 않는 상장 자회사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히타치도 2009년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내고 존폐 기로에 서자 변화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성역 없는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쥔 건 자회사로 물러나 있던 가와무라 다카시 사장이었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가와무라는 경쟁 상대인 독일 지멘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싸워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업은 예외 없이 잘라냈다. 히타치금속과 히타치카세이, 히타치전선 등 ‘고산케(御三家·3대 핵심 기업 및 인물을 가리키는 일본식 표현)’를 매각한 건 일본 재계에 충격을 던진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금속과 전선, 화학소재는 1910년 이바라키현 히타치시 광산의 기계수리 공장으로 출발한 히타치의 모태 사업이기 때문이다.
◇ 과감한 M&A로 사업 전환
가와무라와 그의 뒤를 이은 나카니시 히로아키, 히가시하라 도시아키 등 세 명의 사장은 히타치의 사업 재편 방향을 ‘정보기술(IT) 솔루션’과 ‘글로벌’로 잡았다. 특히 강점인 인프라 사업에 IT를 접목한 ‘사회 혁신 사업(Social Innovation Business)’을 그룹의 핵심 전략으로 정의했다. 실행 수단은 과감한 기업 인수합병(M&A)이었다.
히타치는 지난 10년 동안 M&A에 4조엔 이상을 투입했다. 2020년 약 7400억엔을 들여 스위스 ABB로부터 송배전사업(현 히타치에너지)을 인수했다. 이 거래로 히타치는 송배전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 창업 110년 만에 처음으로 차지한 세계 1위였다. 2021년에는 미국 IT 기업 글로벌로직스를 1조엔에 인수했다. 글로벌로직스 인수로 히타치는 인프라 설비 제조업체에서 전 세계 기업을 상대로 디지털 전환(DX)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신했다.
1998년 23%이던 히타치의 해외 매출은 현재 60%를 넘었다. 2002년 히타치 임직원 약 30만 명 중 해외 근무 인원은 20% 남짓이었지만, 이제는 60%가 해외 근무자다. 2008년 히타치 이사회 멤버 13명 가운데 외국인은 한 명도 없었지만, 2026년 이사회 멤버 12명 가운데 4명이 외국인이다.
2024년 말 히타치의 매출은 9조7834억엔으로 사업 재편에 들어가기 전인 2008년 10조4억엔보다 적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9716억엔으로 2008년(1271억엔)의 약 8배에 달한다. 순익은 7873억엔 적자에서 6157억엔 흑자로 바뀌었다. 몸집은 가벼워지고, 수익성은 훨씬 높은 그룹으로 변신한 것이다.
지난 21일 백색가전 자회사인 히타치GLS를 매각하면서 히타치는 지금도 사업 재편이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침몰 위기에 몰려 반강제로 사업 재편에 나선 2008년의 히타치가 아니라 끊임없이 사업 효율을 높이고 있는 2026년의 히타치를 배워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1 week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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