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코리아둘레길' 뿌리를 찾는 여정

9 hours ago 1

고계성 한국관광학회장·경남대 교수

  • 등록 2025-01-15 오전 5:00:00

    수정 2025-01-15 오전 5:00:00

[고계성 한국관광학회장·경남대 교수]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기 조상, 혈족 관계를 칭하는 성씨에 대한 궁금증을 한 번쯤은 품는다. 설이나 추석과 같은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엔 더욱 그렇다.

고계성 한국관광학회장·경남대 교수

한국의 성씨(姓氏)는 김·이·박 3개가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지만 한자 표기가 가능한 성씨는 총 1507개에 달한다. 성씨는 시조의 고향인 본관(本貫)에 따라 구분하는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 이상인 본관은 858개로 전체 인구의 98%를 차지한다.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시조의 고향이 그저 성스러움만 남은 영역이거나 이제는 잊힌 유산 정도로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핵가족화를 지나 초개인화로 바뀐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좁게는 가족, 넓게는 사회 구성원 간 헐거워진 유대감과 동질성을 강화하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어서다. 보이지 않는 벽으로 단절된 세대 간 소통과 이해를 높이는 매개체 역할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지난해 9월 총연장 4500㎞ 걷기 여행길 ‘코리아둘레길’이 개통했다. ‘대한민국을 재발견하며 함께 걷는 길’을 목표로 2009년 조성을 시작한 지 15년 만이다. 코리아둘레길은 동해안과 서해안, 남해안 그리고 접경지역까지 한반도 가장자리를 중단없이 잇는 걷기 여행길이다. 국토 종주 자전거길부터 지리산 둘레길, 남도 이순신길 등 사시사철 각기 다른 매력의 가장 한국적인 길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동서남북으로 이어지는 코리아둘레길을 걷다 보면 일부러 계획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유명 관광지는 물론 지역 명소를 만날 수 있다. 동시에 자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조상의 발자취가 깃든 장소도 마주할 수 있다. 둘레길 곳곳에 시조의 고향을 비롯해 씨족이 모여 사는 마을인 집성촌, 묘소 등 다양한 성씨 가문의 흔적이 깃든 곳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한반도를 휘감고 있는 코리아둘레길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역할도 하는 셈이다.

2025년 청사(靑蛇)의 해, 코리아둘레길을 따라 조상의 발자취를 찾는 여정에 나서면 어떨까. 길을 걸으며 자기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정체성은 물론 삶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혜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뿌리 찾기’의 여정은 과거와의 교감을 통해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점에서 시간여행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이동 행위’가 연구 대상인 관광학에선 이를 ‘뿌리 관광’이라 부른다. 뿌리 관광은 조상의 행적을 따라 가족의 역사를 찾는 여행이다. 학문적, 정책적으로 아직 국내에선 이론적 근거뿐만 아니라 존재감이 미약한 분야에 속한다.

관광의 가장 중요한 사회문화적 역할은 특정 공간과 지역의 인문학적 가치를 높이는 것에 더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있다. 코리아둘레길을 활용한 ‘뿌리 관광’은 해외여행에 비해 선호도에서 밀리는 국내여행의 매력과 수요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민간의 창의력과 둘레길 길목에 놓인 88개 지역의 다양성을 대중적인 스토리와 콘텐츠로 엮어낼 실행계획만 마련한다면 말이다. 15년 공들여 완성한 코리아둘레길이 뿌리 찾기를 통해 세계 여느 유명 걷기 여행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유산이자 K관광의 대표 자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