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RP 무제한 매입할 것”
정부, 증시·채권 안정펀드 가동
코스피 1.4%, 코스닥 2% 하락
정부와 한국은행이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시장 충격을 달래기 위해 최대 50조~60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한다. 원화값 변동성이 커지고,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을 경우 경제가 위축되고 대외신인도에 타격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은행은 4일 오전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비정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골자로 하는 금융·외환시장 안정화 조치 방안을 발표했다. 한은이 RP를 매각해 시중자금을 흡수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역으로 RP를 매입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계엄 선포와 해제라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한 만큼 시장 안정화를 위해 특별 유동성 공급에 나선 것이다.
한은은 “사실상 시장에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우 한은 부총재보는 “RP와 은행권에 대한 대출 모두 시장의 수요 만큼 (유동성을) 다 공급한다는 방침”이라며 “시장 불안을 잠재울 수준으로 충분히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은은 2020년 코로나19 때와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당시에 RP 매입에 나선 바 있다. 당시 RP 매입 규모는 각각 22조9000억원, 13조2000억원이었는데, 이번 비정례 RP 매입은 이보다 규모가 작을 것이라는 게 한은 시각이다. 이에 따라 한은이 이번에 시장에 공급할 자금은 10조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대규모 유동성 공급안을 밝혔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금융상황점검회의를 개최하고 “10조원 규모의 증시 안정펀드 등 시장 안정조치가 언제든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채권시장·자금시장에는 총 4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펀드(채안펀드)와 회사채·기업어음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와 한은이 시장에 공급하게 될 자금 규모는 최대 6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예상보다 강력한 조치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정부와 한은은 계엄 충격을 엄중한 상황으로 진단했다. 한은이 임시 금통위를 개최한 것은 코로나19 충격이 한창이던 2021년 6월 이후 3년6개월 만이다. 2015년 이후 임시 금통위가 열린 것은 이번을 제외하고 모두 10차례다. 한은은 월 1차례씩 연간 12회 정기 금통위를 여는데, 경제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임시 금통위를 개최해 대응한다. 한은은 당분간 금융·외환시장 점검 차원에서 매일 두 차례 비상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소집하기로 했다.
이날 증시는 코스피 1.44%, 코스닥 1.98% 하락 마감됐다. 외국인은 4082억원을 코스피에서 순매도했다. 선물에서는 3913억원을 순매도했다.
채안펀드 가동 소식에 채권금리도 강보합으로 마감했다. 국채 10년물은 전일 대비 5.9bp(1bp=0.01%포인트) 오른 2.765%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28일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시장금리가 급격히 내려간 점을 감안하면 3일간의 인하 폭만 되돌린 수준이다.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1410.1원으로 주간 거래(오후3시30분) 기준 전 거래일 대비 7.2원 내렸다. 종가 기준 2022년 11월 4일 1419.2원 이후 2년1개월 만에 최저치다. 다만 전날 계엄 선포 직후 1446.5원까지 떨어졌던 것에 비하면 쇼크에서 다소 회복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