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앙은행의 대표적 비전통 통화정책 수단인 ‘포워드 가이던스’가 존폐 논란에 휩싸였다. 케빈 워시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후보자가 최근 인사 청문회에서 축소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포워드 가이던스 제도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시장을 떠받쳐온 중앙은행의 핵심 정책 수단이 재평가 국면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특히 막 취임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역시 포워드 가이던스에 부정적인 의견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선 신 총재가 당장 제도 존폐 여부를 결정하기보다 포워드 가이던스 제도의 실효성과 부작용을 면밀히 살펴보는 기간을 가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 통화정책 수단으로 자리잡은 포워드 가이던스
포워드 가이던스는 중앙은행이 향후 금리 경로와 정책 방향을 사전에 제시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다. 기준금리가 제로 수준에 근접해 추가 인하 여력이 제한될 때 특히 유용한 제도로 활용돼왔다. 금리를 움직이지 않고도 투자자와 기업, 가계의 기대를 조정해 장기금리를 낮추면서 경기 부양 효과를 유도했다.
미 Fed가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본격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한 건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 시절부터다. 1994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금리 조정 이유를 담은 성명서를 처음 발표했다. 1999년에는 금리 방향에 대한 시각도 함께 공개했다.
미 Fed에서 본격적인 포워드 가이던스 제도가 시작된 건 2003년부터다. 2003년 8월 Fed는 성명서에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가 '상당 기간(for a considerable period)' 유지될 수 있다는 문구를 넣으며 금리 동결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처음 시사했다. 2004년 5월에는 '신중한 속도(at a pace that is likely to be measured)'로 금리 인상을 진행할 수 있다는 힌트를 줬고, 다음 달인 6월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질적인 언어로 금리 경로를 시장에 얘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제로 금리 시대'에 진입하자 중앙은행은 '상당 기간' 등 모호한 말 대신 더 강력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2011년 8월 FOMC에서 벤 버냉키 의장은 '적어도 2013년 중반까지(at least through mid 2013)'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밝히며 구체적 날짜를 못박기 시작했다.
2012년 1월부터는 '점도표(dot plot)'를 도입했다. 점도표는 Fed 위원 개개인의 금리 전망을 시각화한 것이다. 중간값 뿐 아니라 개별 위원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시장은 Fed의 속내를 더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시장은 점도표 위 '점의 이동'에 주목하며 미래 금리 경로를 예측하기 시작했다.
2012년 12월엔 '에반스 룰'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라는 날짜를 언급하는 것을 넘어서 '경제 지표가 어느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라는 구체적이고 정교한 조건까지 내건 소통 방식이다. 당시 미국 경제는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실업률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물가도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었다. 버냉키 의장은 "적어도 실업률이 6.5% 이상을 유지하고, 향후 1~2년 사이 기대 인플레이션이 2.5%를 넘지 않는 한, 초저금리(0~0.25%)를 유지하겠다"고 밝히며 소비와 투자를 이끌어내려 했다.
중앙은행의 '자승자박' 피하려는 워시
이처럼 금융위기 이후 포워드 가이던스는 양적 완화(QE)와 함께 중앙은행의 주요 통화수단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단기 금리를 더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미래의 저금리 기조를 약속하면서 장기 금리를 하락시키는 효과를 냈다.
다만 워시 의장 후보자가 집중하는 건 포워드 가이던스의 부작용이다. 특히 데이터에 의존해 당시에 가장 알맞은 통화정책을 펴는 데 제약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 번 내뱉은 약속에 중앙은행이 묶여버리면 경제 상황이 급변해도 즉각 대응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워시는 지난 청문회에서 "미래의 정책 결정을 미리 보여주는 방식으로 답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너무 많은 연준 인사들이 다음 회의, 다음 분기, 다음 해의 금리가 어디에 있어야 할지 미리 의견을 내고 있는데, 나는 그것이 상당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포워드 가이던스 축소를 논의하고 있는 건 미국 뿐 만이 아니다. 포워드 가이던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유럽중앙은행(ECB) 내부에서도 제도를 축소해야 한다는 자성이 일고 있다. 스스로 제시했던 가이던스에 묶여 2021~2022년 인플레이션 대응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7월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전망기간 중반 2%에 도달하고, 그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때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 금리 인상은 자산 매입이 종료된 후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이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가가 폭등하는 와중에던 2022년 초까지도 ECB는 "자산 매입 종료 시점을 고민중"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시장에 "오랫동안 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공표해놓은 상태에서, 이를 번복하는 것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도에 타격을 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ECB는 2022년 6월에야 자산 매입을 종료하고, 7월에야 첫 금리 인상을 할 수 있었다. 당시 물가는 8.6%였다. 미 연준이 2022년 3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한참 늦은 대응이었다.
포워드 가이던스 부정적 입장인 신현송…K점도표 유지할까
한은은 지난 2월 6개월 조건부 금리 전망인 점도표를 도입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21일 취임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그동안 발표한 여러 편의 논문을 통해 포워드 가이던스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여러 번 밝혀왔다.
지난해 7월 한 외신과의 팟캐스트 인터뷰에서도 포워드 가이던스의 한계를 지적했다. 신 총재는 당시 "더 많이 말할수록 시장과의 상호작용은 더 복잡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은 단일한 합리적 개인이 아니다"라며 "수많은 주체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그는 "시장은 헤드라인에 고착된다"며 "작은 글씨의 단서 조항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시장 참가자들이 '우리를 어른으로 대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에서도 "결국 그들이 원하는 건 다음 회의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지 미리 말해달라는 것"이라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이창용 전 총재는 한은을 떠나기 직전 자신이 도입한 포워드 가이던스에 대해 "선진국 미국을 포함한 다른 곳에서는 너무 극단적으로 해서 부작용이 나 돌아오는 거지만 한국은 너무 얘기를 안하다가 조금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K점도표에 대해) 여러 나라에서 재밌는 아이디어"라며 "한국 제도를 수출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선 전임 총재가 금통위원들과 상의해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도를 신임 총재가 곧바로 수정하거나 폐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4일 인사청문회 당시 신 총재는 앞으로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제도가 도입되면 작동을 점검하고 평가하는 기간이 항상 따른다"며 "평가 작업도 금통위원들과 함께 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취임 직후 곧바로 제도의 존폐를 결정하기보다 6개월 점도표의 효과와 부작용을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얘기다.
취임사를 통해서도 이 같은 의중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의 K컬처 뿐 아니라 K점도표 등 한은의 정책적 경험이 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 같은 한은의 정책 경험이 BIS, IMF를 비롯한 국제 논의에서 의미있는 기여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내외 담론 형성에 적극 참여할 장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5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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