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검찰과 경찰이 청구한 구속영장 중 법원에서 기각된 비율이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3년여간 신병 확보를 두고 첨예하게 다툴 만한 사건까지 적극적으로 영장 확보 시도가 이뤄진 영향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내막이 복잡한 경제 범죄와 정치권 비리 의혹에 관한 수사에서 구속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尹정부 3년간 꾸준히 상승
18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경찰이 신청한 청구 포함)이 청구한 구속영장 중 법원에서 기각된 비율은 22.9%(6401명)로 2011년(23.1%·8970명) 후 13년 만에 가장 높았다. 구속영장 기각 비율은 2013년부터 줄곧 10%대 후반에 머물다가 2023년(20.4%) 20%를 넘겼다. 윤 정부가 출범한 2022년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다.
강도, 살인, 성범죄 등 혐의가 명확한 사건에는 대부분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실관계와 위법 여부를 두고 거센 공방이 벌어질 여지가 큰 사건에서 영장 기각 사례가 집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제사건, 당사자 진술에 많이 의존해야 하는 정치 비리가 대표적이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친인척 부당 대출 의혹)을 비롯해 △김성수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부실 제작사 고가 인수) △구영배 큐텐 대표(티몬·위메프 사태 관련 배임·횡령 등) △김상철 한글과컴퓨터 회장(암호화폐 비자금) △‘건진법사’ 전성배(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을 상대로 한 구속영장이 법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검찰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금융·증권, 보이스피싱, 재정범죄, 암호화폐 등을 전담하는 합동수사단을 신설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대장동·백현동 개발 비리, 서해 공무원 피살,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살포 등 야권을 겨냥한 고강도 수사도 이어졌다. 그러다 지난해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과 비상계엄 선포(내란죄) 등 수사까지 더해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들 사건 대부분이 당사자 말과 몇몇 문서기록이 핵심 증거인 ‘화이트칼라 범죄’”라며 “혐의 입증 자체를 두고도 상당한 법리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어 법원이 구속 결정까지 내리기 어려운 사례가 많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도 “무리한 구속 최소화”
법조계에선 구속영장 기각률 상승 추세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암호화폐, 전자지급결제대행(PG), 인공지능(AI) 등 법률과 규제가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신산업에서 위법을 다투는 사건이 늘고 있어서다. 정치권에서도 윤 대통령 파면 후 비상계엄 등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수사가 탄력받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차기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금품 제공·수수, 허위사실 유포, 사전 선거운동 등을 놓고서도 관련 수사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이 무리한 구속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는 점도 영장 기각률을 높이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법원행정처는 구속영장 발부 단계부터 보석금 납부나 거주 제한 등 조건을 붙여 피의자를 석방할 수 있는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판사들이 영장 발부와 기각 외에 ‘기소 전 보석’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두게 된다. 불구속 수사 원칙과 피의자 방어권 보장 등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제도가 현실화하면 법원이 구속 결정을 내리는 데 더욱 신중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박시온/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