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한국의 인연은 각별했다. 교황은 취임 다음해인 2014년 아시아 순회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했다. 천주교도 비율이 전체 인구의 10%인 한국을 택한 것은 당시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교황 방한은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 이후 25년만이었다. 표면적으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 개최를 축하하고 124위 순교자 시복식을 주관하기 위해서였지만 남북 대치 상황에서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방한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실제 70만명이 모인 광화문에서 열린 순교자 시복식에서 교황은 한반도 분단 상황과 남북 화해를 위한 대화를 강조하며 평화를 위한 기도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교황은 방한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면담을 가졌고 서울 서소문순교성지를 참배하고 당진 솔뫼성지와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구름같은 인파를 동원했다. 4박5일 방한을 마치고 귀국길 기내 기자회견에서 밝힌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록도 화제가 됐다. 교황이 반나절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닌 것에 대해 어떤 사람이 중립을 언급하며 리본을 떼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교황은 “인간의 고통에 관해서는 중립적일 수 없다”고 답변했다.
신드롬이 일 정도로 프란치스코 열풍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교황은 방한 이듬해인 2015년 3월 한국 주교들의 사도좌 방문 중에 한국 방문의 기억을 되새기며 독특한 한국 천주교 역사에 대해 축복을 내렸다. 한국은 평신도들의 자생적인 노력으로 천주교가 전파된 유일한 나라로 꼽힌다.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8년과 2021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가능성이 물밑에서 활발하게 논의됐지만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북·미정상회담이 ‘하노이 노딜’ 여파로 물거품이 됐다.
당시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는 최근 저서 ‘나는 갈 것이다, 소노 디스포니빌레’ (메디치미디어)를 통해 교황의 방북 추진 비화를 공개했다.
교황 방북의 핵심 목적은 ‘선교의 자유 확보’였다. 바티칸은 북한에 베트남이나 중국 수준의 종교 개방을 요구했고, 당시 협상 과정에서 양측은 합의점에 접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 황무지’인 북한에 신앙의 씨앗을 뿌리고, 궁극적으로는 북한에 종교의 자유를 이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당시 교황청 내부에선 방북 반대론이 상당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는 교황이기 이전에 선교사다. 사제가 없기 때문에 갈 수 없다가 아니라 사제가 없기 때문에 가야 한다”며 정면 돌파를 주장했다.
2014년 교황 방한을 그림자 수행한 유흥식 당시 대전교구장 주교는 지난 2021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2022년에는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한국의 네번째 추기경으로 유 추기경은 로마에서 콘클라베에 참석할 예정이다. 콘클라베를 참석하는 추기경으론 김수환 추기경 이후 두번 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