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긴박하게 움직인 데는 이유가 있다. 4월 강수진 전 단장이 퇴임한 이후 국립발레단 수장 자리는 현재 공석 상태다. 그런데 최근 공연업계 안팎에서 직업 발레단 경력이 전무한 고령의 무용전공 대학교수가 ‘이재명 대통령 캠프 출신’이란 배경을 업고 차기 단장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우려가 커졌다.
단원들의 집단 반발에 논란이 확산되자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후보 명단에 처음부터 이런 분은 없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사실무근 #어이상실’이라는 해시태그도 달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단순히 ‘어이없다’고 치부하고 말기엔, 그간 축적된 문체부의 예술기관장 인사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다.
장기간 공석이었던 국립예술단체 기관장 자리가 속속 채워지고 있지만 연일 낙하산·보은 인사 논란으로 얼룩졌다. 2월 배우 장동직 씨를 국립정동극장 이사장에 임명한 데에 이어 4월 음식 칼럼니스트 출신 황교익 씨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개그맨 서승만 씨는 국립정동극장 대표 등에 임명됐다. 예술 분야에서의 전문성보단 이 대통령과의 인연이 작용한 ‘코드 인사’란 비판이 문화계 안팎에서 거셌다. 문화연대 등 65개 문화예술 단체와 700여 명의 문화계 인사들이 인사 철회와 전문성 중심의 인사 원칙 수립을 요구하며 반발했다. 하지만 이미 진행된 임명을 되돌리진 못했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봤던 국립발레단 단원들로선 ‘설마’하는 우려가 현실이 되기 전 유일한 방편이 ‘선제적 반발’뿐이었을 것이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공공 기관 ‘낙하산 인사’ 논란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문화단체 기관장 인사는 문화를 정치의 전리품쯤으로 여기는 후진적 인식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문화예술의 수준과 방향을 보여줘야 하는 자리를 비전문가가 채울 때, 그 피해는 특정 단체를 넘어 예술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요한 자리를 인선 기준, 검증 과정도 모른 채 현장 예술인들이 반발하는 ‘깜깜이 인사’로 채워 넣고 있다.
최근 문체부는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K컬처 400조 시대’ 등 문화 강국 실현에 대한 청사진을 밝혔다. 하지만 문화의 힘은 결국 튼튼한 기초 예술 생태계에서 나온다. 예술단체 기관장은 그 생태계의 최전선에서 예술적 비전과 경쟁력을 이끄는 자리다. 지금이라도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기관장 인사 기준과 투명한 검증 과정을 정비해야 한다. “정치의 힘으로 예술을 흔들지 말라”는 예술인들의 호소를 외면하는 일이 다시 있어선 안 된다.
박선희 문화부 차장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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