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왕릉원서 어금니 발견…주인은 15세에 사망 백제 삼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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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조사성과’ 언론공개회에서 출토된 유물인 귀걸이와 백제 23대왕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를 공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3년 9월부터 1-4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 왕족의 장신구와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을 발굴 했다고 밝혔다.   2025.6.17/뉴스1

1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조사성과’ 언론공개회에서 출토된 유물인 귀걸이와 백제 23대왕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를 공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3년 9월부터 1-4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 왕족의 장신구와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을 발굴 했다고 밝혔다. 2025.6.17/뉴스1
백제 23대 임금 삼근왕(재위 477~479)의 것으로 추정되는 어금니 2개가 발견됐다. 백제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웅진기’ 왕들의 묘가 모인 충남 공주시의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재조사한 결과다. 이밖에도 백제가 웅진기 초기부터 이미 안정적 정치 체계를 갖추고 주변국들과 활발하게 교역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유물들이 확인됐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1~4호분’ 조사 성과를 밝히는 언론 공개회를 열었다. 왕릉원 1~4호분은 무령왕릉의 북동쪽에 있는 무덤으로 일제강점기 때 모두 도굴됐다. 1927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의해 간단한 조사가 이뤄졌지만 기록은 많지 않다. 연구소 측이 96년 만인 2023년 해당 유적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한 이유다.

이번 조사 결과 2호분에선 10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어금니 2점이 발견됐다. 전문가 3명이 육안으로 치아의 마모도 등을 살핀 결과 성인의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황인호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장은 “이는 21대 개로왕(재위 455~475)의 손자인 삼근왕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13세에 즉위해 15세에 사망했다는 삼근왕의 기록과 치아의 고고학적 특성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무령왕을 제외하고 무덤들의 주인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발견이 이뤄졌다는 것이 연구소의 설명이다.

1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조사성과’ 언론공개회에서 장신구와 백제 23대왕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 2호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공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3년 9월부터 1-4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 왕족의 장신구와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을 발굴 했다고 밝혔다.  2025.6.17/뉴스1

1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조사성과’ 언론공개회에서 장신구와 백제 23대왕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 2호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공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3년 9월부터 1-4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 왕족의 장신구와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을 발굴 했다고 밝혔다. 2025.6.17/뉴스1

1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조사성과’ 언론공개회에서 장신구와 백제 23대왕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 1-3호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공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3년 9월부터 1-4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 왕족의 장신구와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을 발굴 했다고 밝혔다.  2025.6.17/뉴스1

1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조사성과’ 언론공개회에서 장신구와 백제 23대왕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 1-3호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공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3년 9월부터 1-4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 왕족의 장신구와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을 발굴 했다고 밝혔다. 2025.6.17/뉴스1
금 귀걸이 등 정교한 공예품도 함께 출토됐다. 2호분에서 출토된 청색 유리옥이 달린 금 귀걸이는 백제 초창기인 한성기 귀걸이와 웅진 후반인 무령왕릉 왕비 귀걸이의 중간 형태로 보인다. 삼국시대 금속공예 전문가인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는 “우리가 잘 아는 국보인 무령왕릉 왕비 귀걸이가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금 귀걸이와 함께 발견된 반지는 은에 줄무늬를 새기고 금을 도금했다. 경주 황남대총 북분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반지가 발견된 바 있다. 황 소장은 “당시 백제와 신라 왕실의 혼인 정책이 이뤄졌다는 기록을 뒷받침 한다”라며 “왕실 간 장신구 스타일과 제작 기법이 공유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밖에도 태국산 납 성분이 포함된 유리 옥 등 당시 백제가 주변국과 활발한 무역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유물들이 함께 발견됐다. 황 소장은 “보통 정치적 혼란기로만 알려져 있던 백제 웅진기에도 안정적인 정치 체계와 대외적인 교류 관계를확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귀중한 성과”라고 밝혔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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