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공급” 외쳤지만 올해 착공 실적은 목표치 13.8%
서리풀·과천 곳곳 암초… 삐걱거리는 공급 대책
“50년 전에는 자연보호를 위해 개발을 제한하더니, 이제는 보호 가치가 없다며 이주하라고 한다.”(성해영 서리풀2지구 대책위원회 부위원장)
“부동산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경마공원에 아파트를 짓겠다고 발표하는 건 노동자 수천 명의 삶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겠다는 의미다.”(허연주 한국마사회경마직노조 위원장)
김 정책실장의 화끈한 발언과 달리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내놓은 ‘9·7 대책’(수도권 135만 채 건설)과 ‘1·29 대책’(도심 내 6만 채 건설)은 진척 속도가 더디다. 서울 서초구 서리풀지구와 경기 과천 경마공원 부지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공급 추진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될 만하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9·7 대책 발표 당시 “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해 전체 사업 기간을 2년 이상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두 지역 모두 주민 반발이 본격화하고 있다.특히 반발이 거센 곳은 전체 공급 계획 중 2000채를 차지하는 서리풀2지구다. 이곳에서는 500년간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송동마을 원주민 등의 반발이 거세다. 성해영 부위원장은 “취락 존치 요구서 제출을 시작으로 망루 시위, 지구지정 취소 소송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개발을 저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리풀1지구 역시 서울행정법원에 공공택지 지구지정을 취소하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권영은 서리풀1지구 총주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현재 주민들은 공공주택 공급 계획 재검토와 장기간 그린벨트 지정에 따른 피해를 반영한 정당한 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까지 수도권에서 총 3만7170채 주택 착공이 이뤄졌다. 지난해 정부가 9·7 공급 대책에서 밝힌 올해 착공 목표치 26만9000채의 13.8% 수준이다.
1·9 대책에 포함된 서울 용산·태릉CC 등 도심 지역 개발 역시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이 중 가장 큰 반대에 부딪친 곳은 과천 경마공원이다. 정부는 과천 경마공원을 이전하고 남은 부지에 주택 9800채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과천 경마공원 이전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6월 30일 서울과 과천 경계인 남태령에서 시위 및 기자회견을 열고 이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마사회 직원 변모 씨(40)는 “경마산업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정을 공식 논의조차 없이 공급 대책에 포함한 것은 무책임하다”며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숙의를 통해 진행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과천 시민들 역시 반대 목소리가 높다. 이가영 씨(41)는 “과천은 지금도 과밀 문제가 심각하다. 서울 가는 길이 너무 막혀 고생하는데 주택을 더 밀어 넣으려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때 과천을 주택 부지로 검토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지 않나. 이번 정부도 부동산 여론을 잠재우고자 일단 말부터 하고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전세난이 키운 ‘패닉 바잉’
이재명 정부의 공급 대책뿐 아니라, 수요 억제책 역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임기 1년 사이 벌써 두 차례나 강력한 규제 정책(‘6·27 대책’ ‘10·15 대책’)을 내놨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가격을 안정화하는 데 방점을 찍었지만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12억 원을 돌파(KB부동산 5월 통계)하는 등 상승 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특히 실수요자인 3040세대에서 ‘패닉 바잉’이 벌어지며 수도권 아파트 매매 시장의 매도자 우위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22일 기준 올해 서울에서 아파트 매매가격지수가 가장 가파르게 상승한 곳은 성북구(7.89%)다. 10·15 대책 당시 서울 전역이 규제지역(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으로 묶이면서 대출이 6억 원까지 나오는 15억 원 이하 아파트 수요가 높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서울은 10·15 대책으로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다. 매수자의 2년 실거주 의무가 생기고, 유주택자의 전세 대출이 금지됐다. ‘갭투자’를 근절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성과를 냈으나 전월세 매물 급감이라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도봉구 창동에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B 씨는 “아파트 전세는 물론, 월세 매물도 점차 줄고 있어 신혼살림을 위해 저가 아파트 매입을 선택하는 신혼부부가 많다”며 “강남까지 출퇴근해야 하는 부부도 여기까지 집을 보러 와 놀랐다”고 말했다.
강북 일대 부동산중개사무소 이야기를 종합하면 10·15 대책 이후 급증한 고객층은 신혼부부다. 학군과 직주근접을 포기하더라도 집값이 더 오르기 전 매입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들은 주식과 예금을 끌어모아 만든 부부 합산 3억~4억 원대 자금에 주택담보대출을 최대치(6억 원)까지 일으키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부모 증여나 회사 대출 등으로 충당한다.
이들의 불안은 향후 더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KB부동산에 따르면 5월 기준 서울 중소형 아파트 평균 가격이 15억 원을 돌파하는 등 이른바 ‘키 맞추기’가 서울 전역으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북구 장위동 부동산중개사무소 대표 C 씨는 “지난해 말부터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 시작해 일부 국평(84㎡·이하 전용 면적)이 15억 원을 넘겨 대출 규제 4억 원 대상에 들어가면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찾는 사람들 마음이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도체 셔세권’ 신고가 행진수도권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 지급으로 이른바 ‘셔세권’(셔틀버스+역세권)이 부각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6월 30일 규제지역과 토지허가거래구역으로 지정된 경기 화성시 동탄구다. 이곳의 올해 아파트 매매가격지수 상승률은 11.38%로 6개월 만에 홀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대장주로 꼽히는 동탄역롯데캐슬(84㎡ 22억2500만 원)을 비롯해 GTX-A 노선이 지나는 동탄역 인근 위주 아파트 중심으로 신고가가 속출했다.
이곳 역시 매도자 우위 분위기는 동일하다. 동탄에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정모 씨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성과급뿐 아니라 화성 금곡지구 보상금도 큰 호재라 동탄 아파트 시장으로 자금이 계속 유입될 수밖에 없다”며 “집주인들도 팔려다가 거둬들이기를 반복하고, 배액 배상 후 계약을 해지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부동산 공급 대책과 수요 억제책 모두 현재로선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하는 데 실패했다”고 강조한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10·15 대책으로 전월세가 줄면서 매매 수요가 늘어나 다시 집값을 올리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며 “강남 집값을 잡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 또한 단기간에 그쳤다.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실수요자”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리풀·과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공급 대책은 주민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를 단기간에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시장은 이제 ‘숫자만 있고 실행 방안은 없는’ 공급 대책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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