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리더십 공백' 장기화…체코원전 등 표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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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곳 중 91곳 선장없이 항해
자원비축 중책 광해광업공단 사장
강원랜드 사장 등 직무 대행 속출
주요사업 지연·기강 해이 부작용

  • 등록 2025-01-25 오전 5:10:00

    수정 2025-01-25 오전 5:10:00

[이데일리 김형욱 서대웅 하상렬 기자] 원전 설계·정비 공기업인 한전기술(052690)과 한전KPS(051600)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주도하는 ‘팀 코리아’의 일원으로 20조원대 체코 원전 수출 본계약의 주요 축을 맡고 있지만, 선장 없는 항해를 하고 있다. 사실상 사장이 공석인 상태라서다.

팀 코리아의 중추가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16년 만에 한국형 원전 수출 계약이라는 중차대한 임무 수행을 앞둔 셈으로 우려의 시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전기술은 지난해 5월 법정 임기가 만료된 현 사장이 복무기강 해이로 지난해 10월 직무 정지됐다. 한전KPS 역시 지난해 6월 법정 임기가 끝난 사장이 직무를 유지하는 중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내부 승진을 통한 차기 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해 왔으나, 12월 터진 계엄·탄핵 정국 이후로는 과정이 중단됐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조기 대선 치르더라도 최소 반년 더 공백

이데일리가 24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 등을 통해 331개 공공기관장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전체의 27%에 이르는 91개 기관이 기관장 공석 상태거나 올 상반기 중 기관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22곳은 이미 공석이고, 44곳은 법정 임기가 끝난 기관장이 보직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25명이 상반기 중 법정 임기가 끝난다.

공공기관은 법으로 정해진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일시적인 기관장 공석이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공석 기관도 대부분 직무대행 체제로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계엄·탄핵 정국으로 공공부문의 현 리더십 공백 상황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조기 대선 등으로 탄핵 정국이 상반기 마무리된다 해도 내각이 일을 수습하고 공공기관의 공석까지 챙기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 사이 체코 원전 수출 같은 주요사업과 관련 리더십 부재에 따른 우려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부터 사장이 공석인 한국광해광업공단도 올 초 국가자원안보특별법 시행으로 핵심자원 비축이란 중책을 맡게 됐으나 이를 당분간 사장 직무대행 체제에서 꾸려나갈 수밖에 없다.

강원랜드(035250)는 재작년 12월부터 사장이 공석으로 2년째 대행체제로 새해를 맞고 있지만, 올해 역시 연내 신임 사장을 선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도 현 이사장 임기가 이달 9일 끝나며 후임 임명 절차를 진행 중이었으나, 계엄·탄핵 정국 속 진행 여부를 알 수 없게 됐다.

국정 불안정 속 기강이 해이해질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A 기관장은 임기 막판 외유성 출장을 다녀와 논란이 됐으나, 직후 계엄·탄핵 사태가 터지며 최소 반년 이상 보직을 유지하게 됐다. B 기관장의 경우 임기 종료를 앞둔 지난해 말 새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탄핵 이후 부랴부랴 올해 업무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장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당 기관 내에서도 적극적으로 신규 사업이나 성장동력을 발굴하기보다 수비적인 태도로 업무에 임하는 일이 만연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독 늦었던 尹정부 기관장 인선이 문제 키워

윤석열 정부의 기관장 인선이 유독 늦었던 것도 현 기관장 공백 장기화 우려를 키운 요인이다. 정부가 출범한 지 2년 반이 지났음에도 61명(18%)의 기관장이 여전히 전임 정부 임명 인사다. 기관장 임기가 통상 3년이라는 걸 고려하면 현 시점에선 대부분 현 정부 임명 인사로 바뀌었어야 했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여당이 지난해 4월 총선 낙선 인사를 일부 챙겨줄 필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반년 내엔 인사가 이뤄졌어야 하는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인선이 늦어졌다”고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

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기관장 임명은 가능하다. 실제 계엄·탄핵 정국 이후에도 8명의 기관장 임명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정치적 논쟁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판단이다.

최현선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정당성이 많이 흔들린 상황이기에 기관장을 함부로 임명했다간 나중에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임기가 정해지지 않은 장관이면 몰라도 임기가 정해진 기관장 임명은 차기 정부에 넘기는 게 좋다”고 말했다. 임도빈 교수는 “최소한 여야 합의는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금 임명해도 문제…“최소한 여야 합의 필요”

실제 계엄·탄핵 정국 속 이뤄진 정치권 인사의 기관장 임명에 대해 논란이 이어지는 중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은 국회의 탄핵 표결이 이뤄지기 전인 지난해 12월6일 관련 경력이 없는 이창수 전 국민의힘 인권위원장을 신임 원장으로 임명했다. 이달 20일 취임한 최춘식 한국석유관리원 이사장도 에너지 관련 이력이 없는 전 국민의힘 국회의원이다.

임 교수는 “정부가 해당 분야 정책에 기여한 사람을 논공행상할 순 있지만 전문성과 경영능력 검증 없는 측근 챙겨주는 식 인사는 여야를 막론하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참에 한국전력(015760)공사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공기업은 정치권과 무관한 별도 채용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부 정책을 수행하는 준정부·기타공공기관은 기관장도 정권과 함께 임명되고 물러나는 새 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언도 뒤따른다.

최현선 교수는 “현 시스템은 정권 교체 때마다 알박기나 불협화음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이라며 “새 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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