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행정 혁신…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3중 난제'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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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기지사가 1월 23일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를 방문해 기업인과 간담회를 진행한 후 건설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김동연 경기지사가 1월 23일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를 방문해 기업인과 간담회를 진행한 후 건설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심장부로 불리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거대한 장벽들을 하나씩 허물며 가시권에 들어서고 있다. 투자 규모만 960조원(SK하이닉스 600조원·삼성전자 360조원)에 달하는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그동안 입지 선정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전력 공급 불확실성, 용수 확보라는 이른바 ‘3중 난제’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그러나 경기도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전력망 구축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면서 공기 단축과 예산 절감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도체 초강대국을 향한 대한민국의 도전이 행정 혁신이라는 예상치 못한 돌파구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길(Road)에서 길(Way)을 찾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한때 전력 부족 문제를 이유로 정치권 일각에서 ‘새만금 이전론’이 거론되며 입지 선정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대규모 생산시설 구축에 필요한 전력 인프라 확보 방안과 수도권 집중의 문제점을 놓고, 일각에서는 새만금 등 대체 입지로의 이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경기도는 용인이 보유한 지리적 강점과 국내 반도체 생태계의 집적도를 고려할 때 이전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소재·부품·장비 협력사 네트워크, 고급 인력 풀, 물류 인프라를 단기간에 다른 지역에서 재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원이다.

경기도가 꺼내든 해법은 ‘지방도 318호선 신설도로 지중화’ 모델이다. 도로 건설과 전력망 구축을 동시에 진행하는 국내 최초의 시도로, 기존의 송전탑 건설 방식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주민 반발과 행정 지연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 모델은 경기도 도로정책과와 에너지 관련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문 행정 혁신의 산물이기도 하다. 부서 간 협업이 제도가 아니라 관행에 의해 단절돼 있던 기존 행정 체계를 정면으로 돌파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내용만큼이나 방법론 자체가 주목받는다. 성과는 수치로 입증된다. 통상 10년이 소요되던 건설사업 공사 기간을 5년으로 줄여 2032년 10월 전력망 준공 목표에 청신호가 켜졌다.

도는 용수 공급 문제도 해결했다. 수자원공사 분석에 따르면 2052년까지 용인에 조성될 반도체 생산시설 10곳이 정상 가동되려면 하루 약 133만7000t의 용수가 필요하다. 이에 경기도는 적기 공급이 가능하도록 단계별 인프라 구축과 행정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공기 5년·예산 30%”…지중화 모델의 경제적 마법

‘지능형 공동건설 모델’로 명명된 이 방식의 경제적 효과는 압도적이다. 신설 도로 지하에 전력망을 함께 매설함으로써 중복 굴착으로 인한 교통 혼잡과 소음, 비산 먼지 등 각종 민원을 사전에 차단한다. 지역 주민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도 사업 속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개발 사업이 맞닥뜨리는 전통적인 딜레마를 동시에 해소한 모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도 분석에 따르면 개별 시공 대비 공사 예산을 약 30%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이 성과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도정 전반으로 확산하도록 특별 지시를 내렸다. 경기도는 이에 따라 대규모 SOC 사업(총사업비 40억원 이상, 사업기간 2년 이상)을 추진할 때 계획 단계부터 관계기관과 지하 매설물 공동건설 협의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경기도 공공건설사업 총사업비 관리 지침’을 개정할 방침이다. 오는 2026년 4월 시행 예정인 이 지침은 단순한 지역 행정 규범을 넘어 대한민국 공공 행정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원전·석탄서 RE100으로…“탄소중립도 경쟁력”

초기 전력 공급 구조는 현실적 선택에 기반한다. 삼성전자 국가산업단지는 1단계로 단지 내 LNG 발전소를 신설하고, SK하이닉스는 신안성변전소와 신원주개폐소를 통해 단계적으로 전력을 공급받는 구조로 설계됐다.

그러나 경기도의 시선은 이미 그 너머를 향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달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수출의 전제 조건이 됐기 때문이다. 애플 등 주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이미 공급망 전체에 RE100 이행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파트너사는 거래에서 배제되는 사례가 현실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기도는 두 기업이 2050년까지 RE100을 완수할 수 있도록 ‘경기 RE100’ 전략을 본격 가동 중이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GW를 보급한다는 목표 아래, 매년 상업용 태양광 보급률을 40%씩 높이기 위해 중앙정부와 긴밀하게 공조 중이다. 유럽연합이 도입을 본격화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갈수록 강화되는 글로벌 환경 규제 속에서 우리 반도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지키는 중요한 방어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346만명 고용·650조 생산 유발

난제가 풀리면서 경제적 기대도 최고조에 달했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에 총 16개의 신규 팹이 들어서면 생산 유발 효과는 약 650조원, 고용 창출 효과는 346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용인 클러스터 10개 팹만을 기준으로 삼아도 수백조원의 생산 유발과 수십만 명의 직간접 고용이 기대된다. 이는 단순한 산업 성장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 구조 전반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규모다.

현장의 움직임도 빠르다. SK하이닉스 산업단지의 공정률은 현재 약 79%로 순항 중이며, 삼성전자 국가산업단지 역시 토지 보상이 40%로 착공을 향한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양대 반도체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규 팹의 조기 가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프라 공급이 단 한 달만 지연돼도 그 손실은 수천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반도체는 속도전”이라며 “전력·용수 등 핵심 인프라가 적기에 공급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 용인을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로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수원=정진욱 기자 croc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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