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철원 탐조 여행

두루미를 바라보는 일은 명상에 가깝다. 마음을 비우려 애쓰지 않아도 평온해진다. 먹이를 찾는 두루미의 걸음은 느릿하면서도 리듬이 있고 순백의 깃털에서는 기품 있는 윤기가 흐른다. 이곳은 국내 최대 두루미 도래지인 강원도 철원이다.
● ‘비밀의 호수’와 점·선·면
철원이 탐조(探鳥) 여행 명소가 되기 시작한 건 2012년 휴전선에서 불과 6km 떨어진 동송읍 양지리가 민간인통제선(민통선)에서 해제되면서다. 6·25전쟁 이후 폐쇄됐다가 1970년대에 마을이 들어선 양지리에는 철원평야에 물을 대기 위해 1976년 ‘비밀의 호수’가 조성됐다. 토교저수지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먹이가 풍부하던 이곳에 겨울 철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 가운데에는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인 두루미도 있었다. 일부는 ‘식량난’을 피해 북에서 내려와 ‘탈북 두루미’로 불리기도 한다.
이른 아침 토교저수지에 도착하니 예닐곱 명의 탐조객이 이미 찾아와 삼각대를 설치해 두고 있었다. 눈과 얼음, 물과 하늘의 경계가 흐릿해진 드넓은 저수지에서 잠을 잔 두루미들이 막 깨어나 ‘먹이 터’로 날아가려던 참이었다. 저 너머 재두루미 수백 마리가 회색 점처럼 모여 있었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고 고요하게 새를 바라보는 모습은 일종의 수행이었다. 인간과 새가 어우러진 한 폭의 단색화였다.
철원군은 1999년 양지리를 ‘철새 마을’로 지정한 데 이어 2016년에는 폐교를 리모델링해 ‘DMZ 두루미 평화타운’을 조성했다. 이곳을 총괄 계획한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두루미라는 지역의 고유한 콘텐츠가 공간을 살렸다”고 했다. 비무장지대와 접한 농촌 마을을 정비한 이 평화·생태 관광지는 겨울철이 되면 두루미를 보러 오는 탐조객들로 활기를 띤다. 해설사와 차를 타고 검문초소에 신분증을 제시한 뒤 민통선 이북 지역을 둘러보았다. 인간은 38선을 그었지만, 두루미들은 분단의 시간이 멈춘 듯한 들판 위를 날아오르며 하늘에 선(線)을 그었다. 두루미 발자국이 눈밭 위에 찍는 점과 새의 커다란 날갯짓이 하늘에 긋는 선이 모여 청아한 겨울 산수를 이뤘다.● 인내하며 바라보는 법
민통선을 빠져나와 동송읍 이길리의 한 탐조대를 방문했다. 양지리 토교저수지에서 잠을 잔 두루미들은 해가 떠오르면 먹이를 구하기 위해 이동하는데, 이길리야말로 새들의 먹이가 풍부하다. 농민들이 두루미 먹으라고 물과 볏짚을 남겨두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조응을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이라고 말한다. 존재들이 서로 얽혀 살아 움직이는 세계에서 응답은 책임이 되고, 호기심은 보살핌이 된다. 철원을 찾는 귀한 두루미를 바라보면서, 생명체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지키고 보살필 책무를 생각했다.
● 알아차림, 어우러져 살아감
발아래로 투명한 강물이 흘렀다. 겨울철에만 열리는 ‘한탄강 물윗길’이다. 눈 덮인 강변과 검은 현무암 절벽 아래 있으니 진경산수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강을 따라 걸으니 고석정(孤石停)의 바위 절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루미 날갯짓이 찰나의 선이라면, 이 강과 절벽은 수만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면(面)이다.
김화읍 생창리 용양보의 물길도 걸어 보았다. 얇게 언 강물 위로 마른 낙엽이 내려앉아 있었다. 겨울의 정적 때문이었을까. 독일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초크의 산문집 ‘얼음 속을 걷다’가 떠올랐다. 그는 병든 지인을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혹한의 겨울을 걸었다. 눈길 위에 남은 발자국은 기도의 선이었다. 걷는다는 건, 세계와 관계 맺는 결심이다.
겨울의 철원에서 배운 것은 기다림의 자세였다. 알아차리되 서두르지 않는 일, 주의를 기울이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일. 두루미는 하늘과 땅뿐 아니라 마음에도 깊은 선을 남겼다.

글·사진 철원=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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